권력의 크기만큼 책임도 무거워야 한다
작성일 : 2026.08.19 11:01 수정일 : 2026.08.20 05:39
작성자 : 계석일 기자 ([email protected])
부끄러움을 잃은 지도자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
권력의 크기만큼 책임도 무거워야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는 국민은 수천만 명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 책임자가 아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며, 국민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공적 지도자다.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에게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다. 오늘날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말속에는 우리가 지켜온 중요한 가치가 담겨 있다.
어른을 공경하고, 순서를 지키고, 잘못을 하면 부끄러워하고 사과할 줄 아는 문화다.
설 명절을 앞둔 옛 풍경을 떠올려 보자.
떡을 하기 위해 방앗간 앞에는 쌀을 담은 양재기와 대야가 길게 늘어서곤 했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먼저 온 사람의 것이 앞에 놓였다. 그것이 ‘무언의 질서’였다.
누군가 슬쩍 순서를 바꾸다 들키기라도 하면 얼굴을 붉히며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경찰관과 마주치면 변명부터 하기보다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법이 무서워서만은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보다 남의 탓이 먼저 나오고, 문제가 제기되면 “정치공세”라고 맞받아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면 근거를 들어 반박하면 된다. 정책이 옳다면 국민을 설득하면 된다.
문제는 비판에 귀를 닫고 설명과 책임까지 외면하는 정치문화다.
특히 대통령과 정부는 언론의 비판을 단순한 공격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언론 역시 정확한 사실과 균형 잡힌 논거를 갖춰야 하지만,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8월 19일 조선일보에는 정부의 재정·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칼럼과 정치권을 비판하는 사설 등이 실렸다. ‘이재명 정부부터 빚을 줄여라’는 칼럼은 정부의 부채와 부동산 정책 사이의 모순을 지적했고, ‘김용 당선 시키려는 정권의 무리수, 민심 철퇴에 무산’이라는 사설은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 결과를 권력과 민심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비판했다. 대통령의 ‘No Thanks’ 표현을 외교적 맥락에서 다룬 칼럼도 게재됐다.
물론 한 신문의 사설과 칼럼이 곧 국민 전체의 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부 역시 언론의 모든 비판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비판에 대해서는 최소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정책에 문제가 없다면 자료와 논리로 반박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수정하면 된다. 그것이 민주정부의 자신감이며 책임정치다.
특히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일단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지만 정책의 결과는 수십 년 동안 국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동산·재정·교육·사법제도·국방처럼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일수록 전문가와 이해당사자,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숙의해야 한다.
국가는 실험실이 아니며 국민은 정책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지도자의 도덕성 문제 역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공직자의 과거 잘못과 범죄 경력은 사안의 성격과 법적 책임, 이후의 반성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무조건 낙인을 찍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국민에게 법과 원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지도자라면 자신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다. 지도자가 스스로 도덕적 신뢰를 잃으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아이들은 교과서만 보고 세상을 배우지 않는다.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과 사회 지도층의 행동을 보면서 정의와 책임, 성공의 기준을 배운다.
잘못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하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며, 거친 언어와 편법이 정치적 능력으로 포장된다면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6·25전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나 한미동맹의 역할을 과거의 희생만으로 단순화해서도 안 된다. 국익과 안보환경, 군사적 능력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다만 대한민국이 자유와 생존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함께 피 흘린 동맹의 역사까지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안보에는 감정이 아니라 국익과 신뢰, 그리고 역사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시장 노점에도 상도덕이 있고, 작은 모임에도 지켜야 할 질서가 있다.
하물며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원칙과 도덕이 없다면 그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권력이 클수록 책임도 커야 한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정책에서 이기는 모습이 아니다.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국민의 비판을 들을 수 있는 겸손, 자신의 판단보다 전문가와 국민의 지혜를 존중하는 자세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과 정치권 역시 사실과 근거에 충실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느 한쪽의 독선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지도자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도덕적 자산이다.
잘못했을 때 얼굴을 붉힐 줄 알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일 줄 알고, 틀린 정책을 고칠 줄 아는 지도자.
대한민국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의 모습은 어쩌면 그렇게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부터 법을 지키고, 국민에게 절제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자신부터 절제하며,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권력자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서 국민이 오만이 아니라 겸손을 보고, 변명이 아니라 책임을 보고, 편 가르기가 아니라 통합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은 비판 그 자체가 아니다. 잘못을 알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권력이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비판을 불편해하기보다 그 속에 담긴 민심부터 살펴야 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지만 지도자가 남긴 말과 행동, 그리고 국정의 결과는 역사에 오래 기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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