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기관 수장 향한 여당 대표의 거친 언어…정치에도 금도가 있다
작성일 : 2026.08.21 11:11 수정일 : 2026.08.21 13:44
작성자 : 계석일 기자 ([email protected])
당대표가 됐다고… ‘조희대 씨’라니, 그 입이 여당 대표의 입인가
헌법기관 수장 향한 여당 대표의 거친 언어…정치에도 금도가 있다
![]() |
| AI 이미지 생성 |
사법부 비판은 가능하지만 삼권분립과 법관 독립까지 흔들어선 안 돼
필자는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신임 대표가 지난 19일 부산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조희대 씨”라고 부르며 사퇴를 요구했다.
대법원장을 비판할 수 있다. 대법원의 판단과 대법관 제청 절차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정치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에도 품격이 있고 정치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조희대 씨’…그렇게 부르면 속이 시원한가
김 대표는 조 대법원장을 “해방 이후 최악의 대법원장”이라고 비판하며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대법원장이 아닌 법 기술 원장”이라는 취지의 표현까지 사용했다.
또 법관회의를 열어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거나 그의 행위가 잘못됐다는 판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그렇게 말하면 속이 시원한가.
조희대 대법원장은 개인 조희대이기 전에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사법부의 수장이다.
대법원장이 잘못했다면 법과 헌법의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물으면 된다. 국회에는 국회가 할 일이 있고, 사법부에는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이 삼권분립이다.
여당 대표가 헌법기관의 수장을 향해 공개석상에서 호칭을 낮추고 “나가라”고 압박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당은 이름 그대로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만 존중하는 제도가 아니다.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 판단이 달라도 상대방의 지위와 헌법기관의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대법원장은 여당 대표의 부하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과의 대면 협의 없이 대법관 후보를 서면 제청한 데 있다.
기존의 관례와 달랐다는 점은 충분히 논쟁할 수 있다. 정치권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는 문제와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권한 자체는 구별해야 한다.
관례를 둘러싼 논란이 곧바로 사법부 수장을 정치권력이 몰아내야 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판사를 위한 특권이 아니다.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오늘 여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를 몰아낼 수 있다면, 내일 다른 정권 역시 자신에게 불리한 판사를 몰아내려 할 것이다.
그 순간부터 법원은 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
고영주 변호사의 성명을 읽으며
자유민주당 고영주 변호사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김 대표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명의 표현 가운데는 필자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거칠고 정치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향한 원색적인 표현에는 동의 여부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 제기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입법부도, 행정부도, 사법부도 헌법 아래 있다.”
이 원칙만큼은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대통령도 헌법 아래 있고 국회의원도 헌법 아래 있으며 대법원장도 헌법 아래 있다.
그리고 여당 대표 역시 헌법 위에 설 수 없다.
‘조희대 씨’가 정치의 품격인가
미래세종일보 김용복 논설위원의 글을 접하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대한민국 정치의 언어가 이렇게까지 거칠어졌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렀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까지 낡은 가치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언어를 절제해야 한다.
시장에서 시민이 화가 나서 거친 말을 하는 것과 집권 여당 대표가 공식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기관의 수장을 향해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무게가 전혀 다르다.
마이크가 크면 책임도 커지는 법이다.
정치인의 말은 지지자들만 듣는 것이 아니다.
온 국민이 듣는다.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정치인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가
김 대표는 당선 이후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의 성공을 위해 뛰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당 대표라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성공과 국가의 성공이 언제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정당의 이해보다 국가가 먼저이고, 대통령보다 헌법이 먼저이며, 정치인보다 국민이 먼저다.
특히 대통령과 관련된 재판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돼 있는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사법부 수장을 향해 공개적으로 퇴진을 요구하면 국민 일부는 이를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오해를 만들지 않는 것 역시 집권당 대표가 가져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면 제도를 고치면 된다.
국회에서 토론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법률로 추진하면 된다.
사람을 먼저 공격하고 몰아낸 뒤 제도를 고치겠다는 방식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도 정신 차려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민주당에만 돌릴 수도 없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이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의석을 준 이유는 정부와 여당을 무조건 비난하라는 것이 아니다.
잘한 정책에는 협조하고 잘못된 정책에는 대안을 제시하며 권력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견제하라는 뜻이다.
정부·여당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야당은 더 치밀해야 한다.
고함보다 논리가 필요하고, 막말보다 정책이 필요하며, 장외투쟁보다 국민을 설득할 실력이 필요하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도 위험하지만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야당 역시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김민석 대표에게 묻는다
당대표가 됐다고 해서 모든 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 대표에게 당부하고 싶다.
과속하면 언젠가는 사고가 난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국가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기 바란다. 그다음 정당을 생각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법과 논리로 비판하라.
그러나 상대의 인격과 헌법기관의 권위까지 무너뜨리는 언어는 자제해야 한다.
오늘 내가 상대방에게 던진 거친 말은 내일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
정치인이 국민의 가슴에 박은 대못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처가 쌓이면 결국 선거에서, 역사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한 사람의 나라도 아니다.
민주당의 나라도 아니고 국민의힘의 나라도 아니다.
대법원장의 나라도, 여당 대표의 나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 모두 이 간단한 원칙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이 클수록 말은 더욱 무거워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품격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금주의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