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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으면 인재도 잃는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작성일 : 2026.08.22 05:35 수정일 : 2026.08.22 11:1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가오의 의미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는 표현은 낯설지 않다. 이는 경제적 여유는 없더라도 자존심이나 체면은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서 ‘가오’는 일본어로 얼굴(顔)을 뜻하며, 한국에서는 체면, 명예, 자존심, 폼 등을 의미하는 속어로 쓰인다.

 

따라서 가급적 사용은 안 하는 게 낫다. 그러나 문학적 표현 내지 일반 장삼이사(張三李四, 장씨(張氏)의 셋째 아들과 이씨(李氏)의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름이나 신분이 특별하지 아니한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회자되는 어떤 주장의 임팩트(impact) 무게를 지니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의 의미는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자존심을 버리거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 혹은 기죽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한 대사로 널리 알려졌으며, 유행어처럼 쓰이기도 했다.

 

# 언론사 기고 끊은 까닭

 

양귀자의 인물소설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은 저자가 부천시 원미동을 떠나 서울로 거처를 옮긴 후 서울과 서울 사람들에 대한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그냥 지나치고 마는 아주 사소한 사연들을 유쾌하게, 때로는 쓸쓸한 어조로 펼쳐 보인다.

 

동네 김밥 아주머니, 야채 트럭 행상 아저씨 등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내용은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여기서 이런 글귀가 시선을 강탈했다. - “예술가들만큼 자존심이 센 사람은 없으니까” -

 

맞다! 내가 바로 그런 축(軸)이며 핵심이다. 나는 얼마 전부터 모 언론사에 대한 기고(취재)를 끊었다. 더 이상 멸시와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는 나 나름의 의지 표현이자 포석이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의식의 발현이자 거기서 태동한 자연스러운 행동임은 물론이다.

 

 

# ‘쟁이’는 고집으로 망하더라도

 

양귀자의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에서는 '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쟁이’는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과 ‘그것과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예를 들어 ‘고집쟁이’는 고집이 센 사람, ‘멋쟁이’는 멋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단독으로 ‘쟁이’라고 하면, 문맥에 따라 ‘무슨 일에 빠져 사는 사람’, ‘어떤 분야에서 정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 ‘예술가 중에서 얼추 독보적 위치에 있는 사람’ 같은 뉘앙스를 가질 수 있다.

 

20년 이상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다 보니 그동안 많은 언론사하고도 회자정리(會者定離)가 빈번했다. 그중 압도적 이별 사유는 역시 그리고 단연 용두사미(龍頭蛇尾)가 주인(主因)이었다. 처음과 사뭇 달리 정체성이 흔들리는 등 그 사유는 차이가 다양했는데 본질은 언제나 초심(初心)의 유실(流失)과 훼손이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고료가 아깝다고 기사 승인을 고의로 늦추는가 하면, 눈에 빤히 보이는 나를 향한 일종의 ‘무시’ 따위 역시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사슬로 작용했다.

 

결론적으로 예술가는 자존심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무형의 재산이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는 순간, 예술가는 분노한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를 다시금 호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