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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대기소의 비참한 현실”

죽음 앞에서는 가정이 종합병원이고 안락한 죽음의 안식처라고 합니다.

작성일 : 2026.08.23 20:59 수정일 : 2026.08.23 21:11

작성자 : 이갑선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이갑선 칼럼니스트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대기소의 비참한 현실”

 

죽음 앞에서는 가정이 종합병원이고 안락한 죽음의 안식처

 

 

늙고 병든 부모들이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요양시설에 보내며 부모님의 슬픈 얼굴을 마음 아프게 보는 자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평생을 고생으로 고이 고이 키워 온 자식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참고 모은 모든 것 정든 집과 가족과 살아온 힘들었던 서러움과 짧았던 행복의 순간들 모든 인연들과 이별하는 날.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는 자식들 면전에서 애써 슬픔을 보이지 않으려고 굳은 얼굴에 미소 지으며 내 걱정하지 말고 잘 살라는 부모님의 힘없는 한마디가 과연 얼마나 자식들의 가슴에 전해질까요.

 

마지막 가야하는 피할 수 없는 외롭고 고통스런 저승길 대기소, 우리나라 요양시설이 현실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실상은 지옥보다 더 비참하다.


인생사 덧없고 80이 넘으면 이미 저승으로 가는 길을 접어들어 한참 걸어 왔고, 생명은 꺼져가는 풍전등화와 같은 것이며 삶의 마지막 가는 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잔인하고 슬픈 숙명의 길이다.

 

간병사들은 병원 소속 직원이 아니라 대개 중국인들이며 센타에서 파견받은 사람들로 
병원측의 말도 잘 듣지 않고 환자를 짐승이나 물건 대하듯 학대하며 한국인 요양보호사도 대다수 마찬가지다.

 

돈 받고 일하지만 그들은 요양보호사가 아닌 요양학대(虐待)사들이다. 죽어가는 가냘픈 목소리로 물을 찾아도 잘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먹으면 대소변의 기저귀 갈기가 귀찮아서란다. 모르는 척 휴대폰만 들어다보고 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고용한 단독 요양보호사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 자식들에게 연락을 부탁해도 소용이 없고 어쩌다 자식들이 찾아오면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해도 부질없는 현실은 비참하고 냉혹하다.

 

자식들은 모두 바쁘고 집에서는 모시기가 불가능하단다.


요양시설은 늙어서 세상을 떠나기 전 거처야 할 마지막 코스이며 누구도 거부될 수 없고 머지않아 가야 하는 생지옥이다.

남의 일 같고 나는 가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며 착각일 뿐이며 시간이라는 어둠의 그림자는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누구나 죽을 때는 고통 없이 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마지막 겪어야 하는 고독과 아픔은 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인간이 아닌 차라리 AI가 간병하는 시대가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사람이 잠자리에 들 듯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죽음의 복이 참으로 큰 복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늙은이들에겐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는 효를 중시하는 나라로 내가 어렸을 때 젊었을 때는 사람이 밖에서 죽으면 객사라고 하여 죽을 때는 꼭 집에서 죽도록 모셔 왔고, 혹 밖에서 돌아가신 시체는 객사라고 해서 시체가 집에 와도 방에는 들이질 안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늙은이는 모두가 병원에서 죽어야 하니까 객사지요.
사람이 죽을 때는 자기가 사용하던 침상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바램이랍니다.


죽음 앞에서는 가정이 종합병원이고 안락한 죽음의 안식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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