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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 일가견(百聞, 不如 一家見)”

선입견과 편견보다 든든한 개 한마리가 '백문이 불여일견' 이다

작성일 : 2026.09.04 10:16 수정일 : 2026.09.04 10:28

작성자 : 이갑선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이갑선 칼럼니스트

 

“백문이 불여 일가견(百聞, 不如 一家見)”

 

성급한 판단은 오판을 낳고, 통찰력은 진실을 보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개(犬:개견)’를 키우며 살아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 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비유한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자리를 잡는 두 마리의 개가 있습니다.
한 마리의 이름은 ‘선입견’이고, 또 다른 한 마리의 이름은 ‘편견’입니다.
이 두 마리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직접 보기도 전에 판단하게 하고,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결론부터 내리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선입견과 편견이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그 뿌리에는 자신 생각만 옳다고 믿는 교만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두 마리를 쫓아낼 수 있는 든든한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입니다.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직접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사람의 말만 믿고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직접 만나 보고 경험한 뒤에 판단하라는 삶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 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초라해 보여도 누구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또 한 마리의 개가 필요합니다.


‘일가견(一家見)’입니다. : 어떤 일에 관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안목이나 견해를 뜻하는 말로, 배움과 경험, 깊은 성찰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통찰력입니다.
그런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도 않고,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가장 경계해야 할 ‘개’도 있습니다.
‘꼴불견’입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단정하고, 확인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떠벌리며, 자신의 기준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무지는 배우면 되지만, 교만은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꼴불견은 남을 힘들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품격을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는 어떤‘견(犬)’이 먼저 짖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입견과 편견’이 앞서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백문불여일견’의 신중함과 ‘일가견’의 통찰력이 나를 이끌고 있는지 말입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깊이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만들고, 우리의 인품을 결정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입견보’다 ‘이해’를, ‘편견’보다 ‘배려’를, ‘성급한 판단보다’ ‘따뜻한 통찰’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 아름답고 넉넉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