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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의 시대에서 배려의 시대로 '연기 연출가'에게 묻다

작성일 : 2026.09.08 11:46 수정일 : 2026.09.08 11:50

작성자 : 계석일 기자 ([email protected])

계석일 더뉴스라인 발행인

 

굴뚝의 시대에서 배려의 시대로 '연기 연출가'에게 묻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재떨이’였다. 시외버스와 택시 시트에 재떨이가 달려 있고, 비행기 안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사무실 책상 위는 물론, 병원 대기실에서조차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당시 흡연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기보다 개인의 자연스러운 기호이자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는 완전히 바뀌었다. 식당과 길거리는 물론, 내 돈 주고 산 내 집 안방과 베란다마저 빨간 금연 경고문이 붙는 ‘금연의 시대’다.

 

이제 흡연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 타인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실례이자 무례로 인식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은 법적 의무이자 사회적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길거리나 야외 테이블 등지에서는 여전히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인간 모기향’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본인에게야 그 연기가 은은하고 낭만적인 ‘기호식품’일지 모르겠으나, 맞은편이나 옆자리에 앉은 타인에게는 눈물이 핑 돌고 숨이 막히는 ‘무차별 화학 무기’에 불과하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 성화 봉송 주자라도 된 양 생연기를 나풀거리는 이른바 ‘습관성 연기 연출가’들이다.

 

정작 본인 폐로 들어가는 연기보다 주변 사람의 눈과 코로 직송되는 ‘100% 순수 생연기(부류연)’가 훨씬 더 많다. 흡연자가 손가락의 심심함을 달래는 동안, 비흡연자는 타인의 폐 건강을 담보로 한 기적의 계산법 속에서 간접흡연이라는 폭력을 당하게 된다.


과거의 너그러웠던 문화가 결코 지금의 무심함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기호식품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타인의 건강을 해치고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예의와 양심을 버린 행위다. 본인의 소중한 기호식품이라면 혼자 조용히 100% 완전 연소시키든가, 그 보물 같은 연기를 혼자만 간직하는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담배를 피우지 않을 권리는 담배를 피울 권리보다 언제나 우선한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매너가 결여된 흡연은 문화가 아니라 이기심일 뿐이다.

 

이제는 모두가 사람답게 쾌적한 공기를 마시며 살 수 있도록, 연기를 뿜기 전 내 옆의 누군가를 먼저 돌아보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