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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떡값 단상

주경야독을 보는 두 가지 시선

작성일 : 2026.09.10 14:08 수정일 : 2026.09.10 14:1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주경야독하는 홍경석 작가 이미지를 AI로 생성

 

작년부터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뜻이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쓸데없이 나잇살만 먹은 60대 후반의 늙은이가 50여 년 만에 다시 주경야독을 실천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무엇보다 첫 번째 난관은 기억력의 쇠퇴였다. 불과 어제 외운 영어단어조차 머릿속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배와 수면이 맞닿는 경계선을 ‘수선(水線)’이라고 한다.

 

요즘 내 기억력은 새로 배운 단어 하나를 기억의 수선 위에 띄워놓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외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외우기를 반복한다.

두 번째 난관은 체력이다. 젊었을 때야 밤을 새워도 다음 날 거뜬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하루 종일 움직인 뒤 밤에 책상 앞에 앉으면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치아도 하나둘 빠져나가더니 이제는 뭉텅뭉텅 얼추 다 빠졌다. 삶은 옥수수의 알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피곤한 야간 중학생의 길을 걷고 있다.

 

그제는 평소 존경하는 한 인사(人士)로부터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통화를 마쳤는데, 잠시 후 “다가오는 추석 명절 잘 보내시라”는 덕담과 함께 소위 ‘떡값’이라는 현금이 내 통장으로 입금됐다.

 

순간 어찌나 고맙고 뭉클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설날이나 한가위 같은 명절을 앞두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현금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의 늦깎이 공부와 주경야독을 지켜보고, 그것을 응원해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분이 보내준 추석 떡값에는 단순한 금전 이상의 따뜻한 격려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교량(較量)과 시선이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나잇살을 먹고서 무슨 공부냐며 비꼬는 사람도 있고, 늘그막에 시작한 야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아예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주경야독을 놓고도 어떤 이는 “참 대단하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그 나이에 뭘 더 배우느냐”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시선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잣대로 타인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만이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늦은 공부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인다. 반면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늦깎이 공부는 아름다운 용기로 다가온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배우고, 오늘보다 내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도 좋고,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도 괜찮다. 한 단어를 외우고 한 문장을 읽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작은 성취다.

 

그러니 누가 비웃더라도 나는 계속 걸어가련다. 주경야독의 길이 때로는 힘겹고 외로울지라도, 그 길 끝에서 만날 새로운 나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늦게 시작했다고 늦은 것이 아니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이야말로 그게 진짜 늦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