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나를 왜 그 자리에 세웠는지 알아야
작성일 : 2026.09.11 03:22 수정일 : 2026.09.11 07:22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누구나 아는 상식 가운데 ‘겸손(謙遜)’이 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기 위한 굴종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겸손은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정치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특히 국민을 대신해 공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치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때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까지 인정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정치가 권력과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면 겸손은 사라지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요즘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치권의 한 장면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30대의 젊은 여성 정치인이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자신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야당 정치인과 국회에서 거칠게 충돌한 모습은 젊음의 패기라기보다 오만함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충분했다.
물론 정치에서 치열한 논쟁은 필요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존중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야당이라고 해서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말했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말했느냐다.
논리로 상대를 이기려는 것과 상대를 깔아뭉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패기는 품격을 잃는 순간 무례가 되고, 소신은 독선으로 변한다.
더욱이 정치적 성장 과정에서 두 차례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경력 역시 국민의 시선에서는 냉정하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제도는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의회에 반영하기 위한 장치이지, 개인의 정치적 출세를 위한 사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제도를 통해 거듭 정치적 기회를 얻었다면 그만큼 국민과 사회에 더 겸손한 자세로 책임을 보여줘야 했다.
따라서 그 기회를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거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얻은 것처럼 행동한다면 ‘기회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정치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야당의 공격도, 언론의 비판도 아니다.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이다. 국민은 생각보다 정치인의 말투와 표정,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오래 기억한다.
아무리 화려한 이력과 직함을 갖췄더라도 국민 앞에서 오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는 어렵다. 영화 ‘성난 황소’의 포스터 속 인물처럼 세상을 향해 잔뜩 분노한 얼굴로 돌진한다고 해서 세상이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에서 진짜 강한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젊다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높은 자리에 오른 것 역시 자랑할 일이기 전에 책임져야 할 이유가 된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국민이 나를 왜 그 자리에 세웠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겸손은 자신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반대로 안하무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권력이 커질수록 고개를 더 숙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정치권이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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