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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의 사회, 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

작성일 : 2026.09.17 17:22 수정일 : 2026.09.17 20:51

작성자 : 계석일 기자 ([email protected])

인면수심의 사회, 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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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석일 더뉴스라인 발행인

 

대한민국 정치가 끝판왕의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누구의 잘못을 먼저 따지기 전에, 권력 앞에 아부하고 상대를 꺾는 데만 몰두하는 치졸한 모습이 국민을 지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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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극단으로 흐르면 사회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모습으로 변한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마음에는 배려와 양심이 사라진 사회, 영혼 없는 동물처럼 오직 힘과 이익만 좇는 사회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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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증인 출석 요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성과 반말이 오갔다. 서영교 법사위원장과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 사이의 언쟁은 TV를 통해 그대로 국민에게 전달됐다. “손가락질을 치우라”, “경고한다”, “마음대로 하시라”는 말들이 이어지는 모습은, 국민의 삶을 논의해야 할 국회가 감정싸움의 장으로 변한 것은 아닌지 씁쓸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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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국민은 공의와 정의를 지키고 삶의 본이 되어 달라는 뜻으로 그들을 선택했다. 그러나 상식 이하의 말싸움과 상대를 향한 조롱이 반복될 때 국민은 정치에 희망보다 스트레스를 먼저 느낀다. 아이들이 보기에 민망한 장면이 국회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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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하고, 여당은 다수의 힘에 기대어 독주해서는 안 된다. 날카로운 질문과 강한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을 위한 논리와 정책의 경쟁이어야 한다. 상대의 목소리를 높여 누르는 것이 용기가 되고, 반말과 고성이 투쟁성이 되는 정치라면 국민이 얻는 것은 갈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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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은 국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운전을 조금 서툴게 했다고 경적을 난폭하게 울리고 창문을 열어 욕설을 퍼붓는다. 같은 아파트에 십 년 넘게 살면서도 인사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배려는 사라지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욕심이 자리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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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누르면 내게 이익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깊은 상처와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워 상대국에 모멸감을 주면 무역과 외교의 벽이 높아진다.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에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결국 모든 인류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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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연대가 약해졌다는 우려를 보여주는 지표도 있다. 지난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끝내 숨진 환자는 3,152명으로, 하루 평균 8.6명에 이른다. 2021년보다 27.1% 늘어난 수치다. 반면 뇌사 장기기증자는 같은 기간 감소했다. 생명을 나누는 일이 개인의 선의에만 맡겨져서는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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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기기증 감소를 사회의 병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제도와 의료 현장의 문제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는 마음, 낯선 이웃의 고통을 내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더욱 필요해진 시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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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기보다 존중하고, 다름을 혐오하기보다 토론하며, 힘으로 누르기보다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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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은 아마도 배려와 존중일 것이다. 그 선물을 잃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도 사람다운 사회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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