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의 송곳 칼럼
작성일 : 2026.09.18 14:00 수정일 : 2026.09.18 17:45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 |
| 고무열 (안전교육원 원장) |
대통령 기자회견, 유체 이탈 화법보다 책임이 먼저다.
Ⅰ. 화려한 말보다 무거워야 할 책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국정의 성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불안과 의문에 답하는 자리여야 한다. 특히 경제가 흔들리고 사법적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현란한 수사가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이다. 이번 기자회견을 둘러싼 논란도 결국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정책의 결과보다 더 뼈아픈 것은 그 결과를 대하는 권력의 태도다.
Ⅱ. 경제적 고통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책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논란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국내외 상품 간 규제 차이를 해소한다는 취지로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의 도입을 추진했고, 금융당국 역시 일반 ETF보다 손실 가능성이 높고 단기간에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경고했다. 이후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정부는 괴리율 관리 강화와 기본 예탁금 상향 등 추가적인 투자자 보호 대책을 내놓았다.
야당은 이 과정에서 개인투자자의 손실 규모가 54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국정조사와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 54조 원이라는 수치는 현재 정치권의 주장으로 제시되고 있는 수치인 만큼, 정확한 손실 규모와 정책 도입 사이의 인과관계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의 최종 규모와 별개로 국민의 질문은 분명하다. 위험성이 큰 상품을 왜 그렇게 서둘러 도입했는가. 위험성을 사전에 얼마나 검토했는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떤 보고와 판단이 있었는가. 그리고 결과가 예상과 달랐다면 누가 책임지는가.
정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 책임지는 자세가 없다면 국민의 신뢰는 정책의 성패와 별개로 무너진다. 국민이 경제적 손실에서 느끼는 가장 큰 박탈감은 단순히 돈을 잃었다는 데 있지 않다. 자신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Ⅲ. 사법 문제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원칙
사법 문제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5개 형사재판의 향방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야당은 재판 재개를 요구하고 있고,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둘러싼 사법제도 논의 역시 거센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치세력이 옳으냐가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과 사법절차가 어떤 원칙 아래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다. 대통령에게도 법적 절차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그 의문에 대해서는 정치적 수사보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가 답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법적 의혹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로만 흘러가면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크기와 관계없이 법과 절차가 작동한다는 원칙을 국민에게 확인시키는 일이다.
Ⅳ. 국민이 가장 아프게 받아들이는 것은 '유체 이탈'
경제와 사법 문제는 서로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구조는 닮았다. 정책의 결과에 대해서는 시장을 탓하고, 사법적 논란에 대해서는 정치적 공격을 강조하며, 정작 권력 자신이 무엇을 했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는 인식이 커질 때 국민은 허탈해진다.
물론 대통령에게 모든 경제적 손실의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금융시장은 수많은 변수에 의해 움직이며, 정부 정책 하나만으로 주가의 등락이나 투자자의 손익을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높은 위험성을 별도로 경고해 왔다.
그렇기에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더욱 명확하다. 결과에 대한 정치적 공방을 넘어 정책 결정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누가 제안했는지, 어떤 자료를 검토했는지, 어떤 위험을 예상했는지, 위험관리 장치는 충분했는지, 문제가 발생한 뒤 무엇을 수정했는지를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Ⅴ. 기자회견은 설명의 무대이지 책임 회피의 무대가 아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초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주가를 항상 올리고 집값을 항상 안정시키며 모든 사법적 논란을 단숨에 끝내라는 요구도 아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훨씬 기본적인 것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며, 정책의 결과에 문제가 생겼다면 무엇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 설명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제기된 법적·정치적 의문에 대해서는 권력의 논리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의 원칙으로 답하는 것.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시장을 움직이고 국가기관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말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따라야 한다. 이번 논란에서 국민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대목은 어쩌면 경제적 손실의 액수나 특정 재판의 향방 그 자체가 아닐 것이다.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권력이 얼마나 진지하게 설명하고 책임지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말은 순간을 지나간다. 그러나 정책의 결과와 법치에 대한 신뢰는 오래 남는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해명이 아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책임 있는 행동이다.
국민은 완벽한 대통령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권력이 자신의 결정 앞에서만큼은 정직하기를 요구한다.
구독자의 관심과 정성스러운 후원, 세상을 바꾸는 초석입니다.
(새마을금고: 9003 3123 89068)
금주의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