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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편안하게 웃을 수 있을 때, 정치도 제자리를 찾는다

추석 그리고 헤살과 화기애애

작성일 : 2026.09.25 05:50 수정일 : 2026.09.25 06:41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 눈만 뜨면 상대 당을 향하여 비난을 퍼붓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만이 옳다는 이분법 에고이즘으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있는 가증스러운 정당 모습을 AI로 생성

 

오늘은 추석이다. 어제 집에 도착한 아들과 며느리, 손자는 아직 안방에서 단잠을 자고 있다. 시각은 오전 5시 10분. 나는 평소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났지만, 아들네에게는 여전히 한밤중일 것이다.

 

아내는 잠시 후부터 추석 상차림을 준비하고, 선친을 위한 차례상 마련에도 분주할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웃음이 피어나고 덕담이 오가는 풍경이야말로 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런데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해야 할 추석에 문득 정치판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기서 오늘의 화두는 ‘헤살’과 ‘화기애애’다. ‘헤살’은 남의 일을 짓궂게 훼방하거나 방해하는 일을 뜻한다. 반면 ‘화기애애’는 온화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넘치는 상태를 일컫는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우리말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명절의 밥상은 화기애애한데 정치의 밥상은 왜 이토록 삭막한가.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상대 정당을 향한 비판과 공방이 이어지고, 자기편의 잘못에는 관대하면서 상대편의 잘못에는 추상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반복된다.

 

물론 정당 간 정책 경쟁과 비판은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과정이다. 문제는 그것이 국민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우리 당은 옳고 상대 당은 틀렸다’는 식의 진영 논리로 굳어질 때다.

 

정치는 국민을 편 가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해법을 찾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국민의 마음에 헤살을 놓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명절에 가족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밥상을 뒤엎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부부 사이에도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식탁에 앉아 상대의 말을 들어준다.

 

왜 그 생각을 하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품는다. 정치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정당은 국민보다 앞설 수 없고, 정당의 이익은 국민의 삶보다 우선할 수 없다.

 

선거 때만 국민을 주인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만이 정치의 목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여 국민에게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어야 한다.

 

오늘만큼은 정치인들도 잠시 목소리를 낮췄으면 좋겠다. 상대를 향한 비난의 손가락을 거두고, 국민을 향해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추석은 헤살의 날이 아니라 화기애애의 날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우리 집 안방에서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어 아내가 정성껏 마련한 음식이 차례상과 식탁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웃으며 밥을 먹을 것이다.

 

정치권에도 이런 정겨운 식탁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당리당략이라는 벽을 허물고 국리민복이라는 화두가 푸짐한 식탁에 마주 앉는 정치. 서로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잘한 일은 칭찬하고 잘못한 일은 고치게 하는 정치.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 말이다.

 

이번 추석만큼은 우리 모두가 헤살을 내려놓고 화기애애했으면 좋겠다. 가족에게도, 이웃에게도,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따뜻한 덕담 한마디가 오가는 명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치는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화해의 기술이어야 한다. 국민이 편안하게 웃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도 제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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