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 김상호
나이 들어 농사를 못 짓는 사람은 땅 팔라고?
이번에도 농민들 반발에 정책 되돌리기 언제까지
경자유전 원칙은 1948년 제헌헌법 이래 한국 농업제도의 근간이다. 1949년 농지개혁법은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조항으로 지주-소작제를 해체했고, 1987년 개정헌법은 이 원칙을 121조 1항에 명문화했다. 그러나 2항에서 “합리적 이용을 위한” 임대차와 위탁경영을 예외로 인정한 순간, 예외의 출구가 열렸다.
헌법 제121조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여 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1994년 제정된 농지법 제6조 2항은 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구체적 예외를 열거한다. 상속 농지(1ha까지), 이농자 보유농지(1ha까지), 주말·체험 영농(1,000㎡ 미만), 농업법인, 지자체·학교 등 공공기관, 영농조합법인. 각 예외에는 나름의 명분이 있지만, 합치면 사실상 비농업인도 정상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현제 임차농지 비율 50%, 임대수탁 농지의 76%가 비농업인 소유. 예외 조항들을 모두 합치면, 경자유전 원칙은 사실상 매매 단계에서의 취득자격 제한에서만 남아 있다. 임대차 영역에서는 이미 다양한 예외를 통해 원칙이 우회되고 있다. 소작을 금지한 원칙이, 임대차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현실을 막지 못한 것이다.
개정 농지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농사를 짓지 않는 논밭에 의무적으로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다. 처분 의무기간(1년) 내에 논밭을 팔지 않으면 처분명령이 떨어지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6개월 뒤엔 매년 감정가와 공시지가 중 높은 쪽의 25%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4년만 지나면 땅값보다 더 많은 이행강제금을 내게 되는 셈이다. 자칫 땅을 날릴 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농지 투기를 방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농지를 사놓고 개발이익을 노리는 투기적 소유나 위장 자경은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농지가 무분별하게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투기를 막는 것과 소유자에게 직접 경작을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는 농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관행적인 농지 임대차와 휴경에 대한 처분을 유예하고, 고령농·상속농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해 농지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을 내놓았다. 농지의 불법 전용에 대해서도 일정한 요건 아래 사후 추인을 허용하기로 했다. 추석을 앞두고 농가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는 왜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는가. 대통령이 경자유전 원칙을 강조하고 전국 농지 전수조사를 지시한 뒤, 현장에서 거센 반발이 나오자 다시 예외와 유예를 인정하는 것은 정책의 원칙과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끌어내 농지법을 강화한 건 이재명 대통령이다.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경자유전을 강조하며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와 강제매각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농지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실거주’를 앞세워 비거주 주택을 겨냥했듯, ‘실경작’을 근거로 ‘비자경(非自耕) 농지’를 색출해 엄단하겠다고 칼을 빼 들었다. ‘농촌판 비거주(비자경) 때리기’다.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개인 간 임대차를 금지하면서 예외 조항을 통해 일부만 허용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현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농민이 늙어 경작을 못 하지만 땅은 팔고 싶지 않을 때, 젊은 농민이 경작하고 싶지만 땅을 살 돈이 없을 때,이 사이의 합리적 임대 수요는 공식 제도 바깥에서 해결된다.
구조적 왜곡을 만든 것은 상속 농지다. 비농업인 자녀도 농지를 상속받을 수 있고, 1ha 한도까지는 임대도 가능하다. 고령농의 사망이 가속되면서 상속 농지는 향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함에도 실경작 여부를 따지기 위해 정부는 농지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건국 이후 78년 만에 이뤄진 사상 첫 전국 단위 조사다. 2026~2027년 2년에 걸쳐 전국 농지(195만4000㏊)를 조사하려 수천 명의 인력을 투입하고 드론까지 띄울 정도였다. 조사 대상의 97%를 조사한 결과 27%에 해당하는 284만 필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조사 농지의 4분의 1가량에 잠재적 투기꾼 딱지를 붙일 수 있단 말이다.
그럼에도 ‘농지 투기꾼’을 잡으려 이뤄진 농지 전수조사는 역설적으로 경자유전이란 허상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농촌의 현실은 경자유전과는 거리가 멀다. 인구는 줄고 농업인은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농사를 짓던 이들도 늙어가며 놀리는 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나이 든 농민이 세상을 떠나며 자식이 농지를 상속받은 경우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농지는 남아돌지만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임차 농가가 절반가량에 이르고, 실제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소작을 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을 정도다. 기계농이 불가능한 곳은 임차인을 구하기도 어렵다. 농지은행 활용도 언감생심이다. 농사만 지어준다면 무상 임차하는 경우도 많다. 자경을 하겠다고 가시오갈피만 심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농지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불법·위법 투성이지만 경자유전의 원칙이 사문화한 현실의 논리가 있는 것이다.
농사짓지 않으면 논밭을 팔라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다. 고령화와 인구 소멸로 농지를 살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농지는 아무나 살 수 없다. 개정 농지법은 이미 얼어붙은 농지 거래 시장에 등장한 메가톤급 악재다. 농사를 지으려 덜컥 논밭을 샀다가 혹여 휴경이라도 하게 되면 이행강제금을 내거나 땅을 강제로 팔아야 할 수도 있는데 농지를 사겠다고 나설 리 만무하다. 팔 사람은 줄을 설 판인데, 살 사람은 없는 시장의 결과는 뻔하다. 가격 급락에 거래 절벽이다.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농지법을 강행하다 보니 “농지 국유화를 하겠다는 것이냐”는 의혹까지 불러일으킨 것이다.
현실을 등한시한 개정 농지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자 당정은 투기 목적이 아닌 관행적 위반에 대해서는 구제·계도 절차를 마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이다. 전 인구의 4%에 불과한 농민이 전 국토 면적의 18.8%의 농지를 소유하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다. 농지의 활용도를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사문화한 원칙에 매달려 국민을 투기꾼과 범법자로 만드는 건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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