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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美製) 비자 발급 도장 하나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 미국은 문을 닫고, 한국 외교는 중심을 잃었다.

고무열의 송곳 칼럼

작성일 : 2026.10.06 10:54 수정일 : 2026.10.09 08:32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고무열 박사(안전교육원 원장)
 

미제(美製) 비자 발급 도장 하나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 미국은 문을 닫고, 한국 외교는 중심을 잃었다.

 

Ⅰ. 미국이 현관문을 닫기 시작했다.

 

민주당 전) 당대표 정청래가 국정감사 일정으로 한 비자 신청이 거부당했다. 여당 국회의원이 공적인 일로 신청한 비자를 거부한 것은 한미동맹에 심대한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한때 대한민국에는 든든한 ‘미국 삼촌’이 있었다. 전쟁 때 피를 나눴고, 전후 폐허에서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설 때 안보의 우산을 펴주었다. 그런데 요즘 그 삼촌의 표정이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어서 오세요” 하던 문이 이제는 “잠깐만요. 신분증부터 보여주시죠”로 바뀌었다.

 

미국 비자 도장 하나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미국 국무부 역시 비자 인터뷰 대기시간이 업무량과 인력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도장 하나가 아니다. 도장 뒤에 있는 ‘신뢰’다.

 

동맹 사이에 신뢰가 두터우면 서류 한 장도 가볍지만, 신뢰가 흔들리면 서류 한 장에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국가도 사람 사이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맹국이 우리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이것이 외교의 출발점이다.

 

Ⅱ. 균형 외교라더니, 이런 망신이 있나?

 

현 정부는 미국과도(Thank you) 잘 지내고 중국과도(谢谢) 잘 지내겠다는 균형 외교를 이야기한다. 말만 들으면 이상적이다. 문제는 국제정치가 동네 모임에서 형 오빠 사이가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양쪽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분명한 원칙과 국익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우리 편이냐”라고 묻고, 다른 쪽에서는 “우리와 얼마나 가까우냐”라고 묻는 상황에서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다면 균형은 외교 전략이 아니라 혼선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외교는 모든 나라의 비위를 맞추는 기술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국가의 핵심 이익을 분명히 하고, 그 원칙에 따라 우선순위를 세우는 국가전략이다.

 

Ⅲ. 미국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도 미국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70년 넘게 동맹을 맺어온 나라가 어느 순간부터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애매한 메시지를 내며, 안보 문제에서도 동맹의 신뢰보다 국내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는 모습이 보인다면 미국은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당연히 “대한민국은 우리와 같은 방향에 서 있는가?”라고 묻게 될 것이다.

 

동맹은 선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동의 가치와 안보 이익을 공유하고, 위기의 순간 적극적인 행동으로 신뢰를 보여줄 때 비로소 굳어진다. 한미동맹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 한국을 믿게 만들려면 한국 역시 말이 아니라 정책과 행동으로 동맹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Ⅳ. 미국도 변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냉정해져야 한다.

 

물론 미국만 탓할 일도 아니다. 미국 역시 자국의 국익을 우선한다. 최근 국제질서가 더욱 거래적·실리적으로 변하면서 미국이 동맹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은 더욱 분명하다.

 

미국이 우리를 무조건 챙겨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되고, 중국이 우리에게 공짜 밥상을 차려줄 것이라고 믿어서는 더욱더 안 된다. 국제사회에는 공짜가 없다. 동맹도 국익을 계산하고, 경쟁국도 계산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역시 철저하게 국익을 계산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 눈치, 중국 눈치, 북한 눈치, 국내 정치의 눈치까지 살피느라 정작 대한민국의 장기적 국익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Ⅴ.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전략적 혼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교에서는 때로 의도적인 모호성이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호성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국민과 동맹국이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방향조차 알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혼란이다. 특히 안보에서는 더욱 그렇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간 정보 공유와 군사협력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제기된다면 정부는 원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과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 “안심하십시오”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국민이 안심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근거로 안전한지, 어떤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설명 없는 안심은 신뢰를 만들지 못한다.

 

Ⅵ. 대통령은 외국 정상의 표정보다 국민의 안전을 먼저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왜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과 중국의 표정을 살펴가며 우리 외교의 방향을 추측해야 하는가. 대통령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은 외국 정상의 표정이 아니라 국민의 불안과 국가의 위험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외교 수사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모습도 아니다. 안전한 나라, 강한 동맹, 예측이 가능한 외교, 자존심 있는 대한민국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잘 보이겠다고 애쓰다가 정작 대한민국이 원칙 없는 국가로 인식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외교다. 최소한 미국과의 동맹만 굳건히 해도 대한민국 잘 지켜낼 수 있다.

 

Ⅶ. 미제 도장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신뢰다.

 

결국 미제(美製) 도장 하나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신뢰받느냐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믿고, 중국은 대한민국을 함부로 흔들 수 없으며, 북한은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보지 못하고, 국민은 정부의 외교·안보 판단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미국의 문이 닫혔다고 탓하기 전에 왜 우리의 신뢰가 약해졌는지 돌아봐야 한다. 중국의 문이 열렸다고 환호하기 전에 그 문을 통과하면서 치러야 할 외교·안보·경제적 대가가 무엇인지 계산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를 시험한다면 왜 그런 판단을 하는지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외교의 실패는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작은 불신이 쌓여 어느 순간 국가의 협상력과 선택지를 좁힌다.

 

Ⅷ. 이제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로 돌아가야 한다.

 

해법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첫째,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의 핵심축으로 명확히 하고 고위급 전략 소통과 정보 공유, 연합 방위 태세를 안정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중국과는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되 경제·통상과 안보·가치의 영역을 구분하는 원칙 있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북한에는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핵·미사일 위협에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분명한 억제력을 보여줘야 한다. 넷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안마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대통령실과 외교·국방 당국의 전략적 컨트롤 타워를 강화하고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다섯째, 외교정책의 주요 판단 근거와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 불필요한 불안을 줄여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무조건 기대는 외교도, 양쪽의 눈치를 보는 외교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기준으로 동맹은 강화하고, 중국과는 관리하며, 북한에는 억제력을 갖추는 ‘원칙 있는 실용 외교’다.

 

Ⅸ. 줄에서 내려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 눈치를 볼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국익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하라. 외교는 눈치 게임이 아니고, 안보는 인기투표가 아니다. 동맹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우산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다.

 

미제 도장 하나 받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정말 두렵다면 도장부터 탓할 일이 아니다. 그 도장을 찍어주는 국가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그리고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예측이 가능한 파트너로 평가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미국의 문이 조금 닫혔다면 문밖에서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그 문 앞에 서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중국의 문이 열렸다면 그 문 안으로 들어갈 때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지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웃고 있다면 왜 웃고 있는지부터 분석해야 한다. 대한민국 외교의 주인은 미국도, 중국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것은 화려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분명한 원칙과 냉철한 국익 계산이다.

 

한미동맹의 신뢰를 회복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국익에 따라 관리하며, 북한에는 강력한 억제력을 갖추고, 국민에게는 외교·안보의 방향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다시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길이다. 미제(美製) 도장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넉 자에 찍힌 ‘신뢰’라는 도장이 다시 빛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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