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의 송곳 칼럼
작성일 : 2026.10.10 14:40 수정일 : 2026.10.10 20:37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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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 박사(안전교육원 원장) |
5·18 유공자 명단, 감출수록 커지는 의혹
- 명확한 공개로 의혹을 해소하고 명예를 드높여라.
I. 국민의 질문을 정치적 공격으로 몰지 말라.
국가가 부여하는 명예는 국민의 신뢰 위에서 빛난다. 국가유공자라는 지위도 예외일 수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예우와 지원을 제공한다면, 어떤 기준과 절차로 자격을 인정했는지 설명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5·18 민주화 유공자 명단 공개 논란이 오랜 세월 해소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은 묻는다. 유공자 인정 기준은 무엇인가? 심사는 공정했는가? 모든 대상에게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었는가?
물론 당연히 개인정보는 보호해야 한다. 법률과 법원의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가 국가가 설명할 책임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공개할 수 없는 정보는 보호하되, 공개가 가능한 공적 사항과 심사 기준은 투명하게 밝히면 된다.
국민의 질문을 역사 왜곡이나 정치적 공격으로 몰아붙인다고 의혹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설명이 부족할수록 불신은 깊어진다. 정부와 보훈 당국이 떳떳하다면 침묵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와 합리적인 절차로 답해야 한다.
국민의 질문은 죄가 아니다.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에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II. 유공자 자격, 정치적 특혜 의혹에서 자유로운가?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하고 피해 본 이들의 명예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희생에 대한 존중이 유공자 인정 제도에 대한 검증까지 금지하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 당시 정치·사법적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유공자 인정 범위를 두고는 오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정치권 인사들의 자격을 둘러싼 특혜 의혹도 제기되어 왔다.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공자 자격을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반대로 정치적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검증 자체를 거부하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다. 핵심은 이름도, 정당도 아니다. 어떤 공적과 피해를 근거로 인정했는지, 법적 요건을 충족했는지, 심사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특혜가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정당한 인정이라면 객관적인 근거로 의혹을 해소하면 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 의혹이 반복되는데도 검증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국가유공자라는 명예가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처럼 인식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정당하게 인정받은 유공자들이다.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방치하는 것은 역사적 명예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명예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공적이 정당하다면 검증은 명예를 훼손하는 칼이 아니라 명예를 지키는 방패다.
III. 비공개라는 방패 뒤에 숨지 말라
해법은 명확하다. 유공자 인정의 법적 근거와 심사 기준, 절차를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개가 가능한 공적 내역과 통계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검증 절차를 통해 심사의 적정성을 확인하고, 오류나 부당한 처리가 발견되면 법과 원칙에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
명단 전면 공개가 법률상 제한된다면 그 근거를 명확히 설명하고 대안을 마련하면 된다. 비식별화된 자료 공개나 독립적인 외부 검증 등 가능한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 법적 한계를 존중하는 것과 행정의 불투명성을 방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검증은 특정 정파를 겨냥한 정치적 보복이어서도 안 된다. 모든 대상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검증 결과가 정치적 공방을 넘어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존중하는 일과 국가 보훈 행정을 검증하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오히려 인정 기준이 공정하고 절차가 투명할수록 정당하게 인정받은 유공자의 명예는 더욱 확고해진다.
IV. 역사에는 존중을, 국가 행정에는 검증을
국가가 부여하는 명예는 정치적 보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라면 더욱 엄격한 기준과 투명한 절차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며, 어떤 정치세력도 검증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제 정부와 보훈 당국은 비공개 원칙만 되풀이하는 소극적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밝히고, 공개가 가능한 정보를 공개하며, 독립적인 검증을 통해 불신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거나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그 이름을 내세워 합리적인 의문까지 봉쇄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지키는 길이다.
무조건적인 전면 공개도, 무조건적인 비공개도 답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법과 원칙에 따른 투명한 공개, 객관적인 검증, 그리고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다. 역사는 존중하되 행정은 검증하라. 명예는 보호하되 특혜 의혹은 해소하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보훈 제도에 검증의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명예는 감추는 데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떳떳하게 설명하고, 공정하게 검증받으며,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는 데서 지켜진다. 성역을 허물어야 신뢰가 산다.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가만이 국민 앞에 당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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