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권 징크스
작성일 : 2026.10.12 05:25 수정일 : 2026.10.12 10:24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어제는 대전 동춘당공원에서 열린 「제2회 대덕구청장배 씨름대회」를 보러 갔다. 우리 고유의 민속 스포츠인 씨름을 관람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눈길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행운권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관객들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도록 행운권을 나눠주었다. 사회자가 번호를 호명하고, 해당 번호를 가진 사람에게 쌀과 화장지 세트 등 제법 푸짐한 경품을 증정하는 방식이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선물을 받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솔깃한 유혹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른바 ‘공짜 심리’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행운권 한 장을 손에 쥐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비록 작은 선물일지라도 당첨의 기쁨은 결코 작지 않다. 누군가는 쌀을 받고, 누군가는 화장지 세트를 받으며 환호했을 것이다.
공짜로 얻은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 때문이리라. 그런데 나는 중간에 행사장을 떠났다. 때아닌 무더위도 한몫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행운권과 나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었다.
기대하면 빗나가고, 혹시나 싶어 기다리면 역시나로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복권이나 경품 추첨에서 당첨의 기쁨을 누린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전무하다’는 표현이 맞다.
그래서인지 행운권을 받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번에도 꽝이겠지.’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자기방어적 심리가 작동하는 셈이다. 어쩌면 나는 행운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행운을 기대하는 일에 먼저 지쳐버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상에는 운이 따르는 사람이 있다. 복권에 당첨되고, 경품 추첨에서 연거푸 선물을 받으며, 뜻하지 않은 기회까지 척척 잡는 사람들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평생 성실하게 살아도 대박과는 거리가 멀다.
열심히 일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데도 삶은 좀처럼 넉넉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행운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일까?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라는 드라마를 봤다. 행운도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찾아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현실의 로또 1등은 성실하게 출근한다고 해서 당첨되는 것이 아니다.
당첨은 확률의 영역이며, 노력과 선행이 당첨 번호를 결정해 주지도 않는다. 덕을 많이 쌓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은 인생의 도덕적 가르침이지, 복권 당첨을 보장하는 공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묻는다.
도대체 얼마나 더 덕을 쌓아야 행운이라는 손님이 찾아오는가? 남에게 베풀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정직하게 살아가면 언젠가는 하늘도 알아주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나 역시 그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행운의 의미도 달라진다. 경품으로 받은 쌀 한 포대가 행운일 수 있지만,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행운이다.
가족이 곁에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며,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공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눈앞에 놓인 복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아직 손에 들어오지 않은 복만 크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행운권에 당첨되지 못한 아쉬움까지 억지로 감출 생각은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뜻밖의 선물을 받고 싶고, 남들처럼 환하게 웃으며 당첨 소감을 말하고 싶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작은 경품 하나를 얻지 못했다고 내 인생 전체를 불운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행운권은 달랑 한 장이지만 인생은 수많은 날로 이어진다. 오늘은 꽝이더라도 내일은 다를 수 있고, 경품 추첨에서 밀렸더라도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행운을 기다리되 행운에 매달리지는 말아야겠다. 덕을 쌓는 일도 당첨을 위한 투자라기보다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실천이어야 한다.
아무튼 내가 어제 받았던 행운권 번호 216번은 과연 당첨되었을까?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행사장을 떠난 나에게 그 번호는 여전히 미완의 기대이자 작은 미련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행운이 찾아온다면 기꺼이 웃으며 맞이하리라. 그러나 오지 않는다고 해서 삶을 원망하지도 않으리라. 경품은 받지 못해도 사람다운 마음만큼은 잃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쉽게 빼앗아 갈 수 없는 진짜 행운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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