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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 난맥, 이제는 권한의 구조를 바꿔야 할 때 - 대립과 독점의 정치에서 견제와 협치의 정치로

고무열의 송곳 칼럼

작성일 : 2026.10.14 14:40 수정일 : 2026.10.14 18:49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고무열 박사(안전교육원 원장)
 

대한민국 정치 난맥, 이제는 권한의 구조를 바꿔야 할 때

- 대립과 독점의 정치에서 견제와 협치의 정치로

 

대한민국 정치가 길을 잃었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는 인물 교체를 넘어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국회는 민생을 논의하는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정쟁과 극한 대립의 전쟁터가 되었고, 여야의 언어는 설득과 타협보다 조롱과 저주로 얼룩졌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정치인들의 약속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지만, 정작 국민이 마주하는 현실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 민생 불안, 그리고 정치 불신의 심화다. 정치가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기는커녕 새로운 걱정거리를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권은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친다. 그러나 민생을 위한 법안과 정책은 정쟁에 발목이 잡히고, 국정의 중요한 현안마저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흔들린다. 상대를 굴복시켜야 승리하고, 상대의 실패가 곧 자신의 성공이 되는 정치에서 국민은 없다.

 

정치가 이토록 거칠어지고 무책임해진 원인을 단순히 정치인의 자질이나 도덕성 탓으로만 돌려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멀쩡하던 사람도 여의도에 입성만 하면 정파에 휩쓸려 변질되는 시스템이다. 이젠 사람의 문제를 넘어 제도의 문제를 직시해야 할 때다.

 

I. 승자독식의 정치가 대립을 부추긴다.

 

이젠 대한민국에 걸맞은 정치제도를 수립할 때다. 외국의 제도를 여과 없이 수용한 결과 많은 폐단이 드러났다. 우리의 문화와 상황에 맞는 정치를 창출해야 한다. 현행 대통령중심제와 소선거구제는 각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정치 현실에서는 권력 집중과 승자독식의 폐해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행정부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국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 입법권을 바탕으로 정국을 뒤흔들 수 있다. 반대로 권력을 잃은 쪽은 국정 운영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권한을 공유하고 타협할 유인이 약한 구조에서는 상대를 협력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이고, 상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극한투쟁에 나선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의 정책과 인사를 뒤집는 일이 반복된다. 정치가 국가의 장기적 발전보다 다음 선거와 정권의 향방에 종속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갈등의 방향과 강도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갈등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치인의 선의에만 기대어 협치를 요구하는 것은 자동차의 제동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운전자의 기술과 양심만 믿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권력을 절제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II. 12·3 비상계엄 사태가 남긴 뼈아픈 교훈

 

12·3 비상계엄 사태는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통령의 비상 권한 행사는 헌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 한계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 국회의 견제 역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책임 있게 행사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의 권한도 헌법 위에 설 수 없으며, 정치적 목적이 헌정질서보다 앞설 수도 없다.

 

이 사태를 특정 인물의 판단 착오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제도적 문제를 이유로 개별 행위의 책임을 흐려서도 안 된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행위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권한의 오남용을 예방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헌정질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를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정치가 지속된다면 국가적 위기는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권한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 권력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으며 누가 어떤 절차로 통제하느냐다. 견제와 균형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헌법적 원칙이어야 한다.

 

III. 개헌은 정략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이제 정치개혁의 중심에 권한의 구조 개편을 올려놓아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국회의 입법권과 견제 기능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충돌을 어떤 절차로 조정할 것인지, 사법부의 독립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국가 발전의 속도가 느릴지언정 독재의 칼날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권한 분산, 국회의 책임정치 강화, 권력기관에 대한 실효적 통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이 검토 대상이다.

 

물론 개헌 자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권한을 나누는 방식에 따라 오히려 정치적 교착이 심해질 수도 있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위험도 있다. 따라서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 특정 모델을 성급하게 정답으로 단정하기보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과 헌정 경험에 맞는 대안을 공개적으로 비교하고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지역 대표성과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가 의석에 합리적으로 반영되도록 하되, 지역주의와 극단적 대립을 완화하고 정치적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 특정 정당이나 현직 정치인의 이해관계를 위한 거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원칙과 절차가 우선되어야 한다.

 

IV. 부패와 무책임을 막는 제도적 방화벽을 세워라.

 

권한의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 정치의 난맥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공직자의 부패와 권한 남용을 엄정하게 감시하고, 선거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며, 정당의 공천과 정치자금 운영을 더욱더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 중대한 비위나 범죄에 관해서는 법률에 따른 엄정한 책임을 묻되, 단순한 의혹이나 정치적 반대만으로 누구의 정치 참여를 자의적으로 봉쇄해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 원칙과 공정한 재판, 국민의 참정권 역시 함께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의 목표는 특정 세력을 배제하는 데 있지 않다. 부패한 권력은 어느 진영에서든 견제받고, 성실하게 일하는 정치인은 정당한 평가를 받으며, 국민이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권한의 집중을 막는 장치와 권한 행사의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정치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V. 정치를 바꾸려면 권한의 작동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위기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승자독식의 선거 구조,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 극단적인 진영 논리, 타협을 실패로 여기는 정치 문화가 오랜 시간 쌓여 오늘의 난맥을 만들었다.

 

따라서 해법 역시 단순한 인물 교체나 일회성 정치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과 책임을 묻는 구조를 함께 바꾸는 근본적 개혁이어야 한다. 평화(平和)는 쌀을 나누는 모습에 빗대어 설명하곤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한쪽이 독점하고 다른 쪽을 배제할수록 갈등은 깊어지지만,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서로의 정당한 견제를 인정할 때 협치의 공간은 넓어진다. 물론 권한의 분점이 무조건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책임 소재와 작동이 가능한 의사결정 절차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정치권의 끝없는 권력 다툼을 인내할 여유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정치가 아니라 국가를 바로 세우는 정치다. 대통령과 국회 모두 헌법이 부여한 권한의 한계를 인정하고, 여야는 정파적 이익보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해야 한다. 그 원칙을 말로만 외치지 않고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정치인의 양심에만 기대는 정치는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권한을 절제하도록 설계하고, 남용에는 책임을 묻고, 견제와 협치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한국 정치의 난맥을 풀기 위한 출발점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권력구조 개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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