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스님은 절 싫으면 떠나는 법

신뢰가 흔들리면 그 관계는 끝이다

작성일 : 2026.10.19 05:29 수정일 : 2026.10.19 08:43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만남도 있지만 헤어짐도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처럼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이별도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가 아닐까.

 

최근 나는 두 곳의 언론사와 결별했다. 한 곳은 소정의 고료, 즉 취재비를 받는 매체였다. 문제는 기사를 작성해 송고하면 승인이 지나치게 늦어진다는 데 있었다.

 

뉴스는 말 그대로 ‘뉴스’다. 시의성이 생명인데 며칠씩, 때로는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인터뷰이에게서도 “이게 월간지냐?”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개선해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혹시 나에게 지급하는 고료가 아까워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상대의 속내를 내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신뢰가 흔들리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결국 나는 떠났다. 두 번째 언론사는 더욱 특별했다. 무려 십 년 가까이 고료 한 푼 없이 칼럼을 연재했다. 나름대로 봉사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발행인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감사의 표현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작은 말 한마디면 될 일이었다.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스님은 절 싫으면 떠나는 법이라는 말이 있다. 억지로 붙잡을 이유도, 붙잡혀 있을 이유도 없었다.

 

관계란 결국 서로의 마음이 오갈 때 비로소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최근 논란이 된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이른바 ‘소방 재정 빨대’ 발언과 사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추 지사는 소방 재정의 구조적 부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소방을 ‘재정 빨대’에 비유했고, 이후 논란이 커지자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과드린다”는 취지의 표현을 두고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과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모두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가 받은 상처를 헤아리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행동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사과의 의미가 완성된다.

 

반면 진정성 없는 사과는 오히려 상처를 덧낸다. 마치 상처 난 곳에 약을 바르는 척하면서 소금까지 뿌리는 격이다.

 

사과뿐이겠는가. 칭찬도, 감사도, 봉사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고료를 받든 받지 않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수고했다”는 한마디는 큰 힘이 된다. 십 년 가까이 원고를 보내온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없다면 그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람은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인정받고 있다는 마음, 그리고 서로에게 진심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믿는다. 사과에는 진심이 있어야 하고, 관계에는 존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다면 떠나는 것도 하나의 용기다.

붙잡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조용히 떠나는 사람이 오히려 관계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과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진정성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은 그것을 반드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