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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미래를 담보로 한 포퓰리즘의 끝 ― 돈은 오늘 뿌리고, 청구서는 내일 청년에게 보내는 이재명식 정치경제학

고무열의 송곳 칼럼

작성일 : 2026.10.19 11:39 수정일 : 2026.10.19 12:35

작성자 : 고무열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고무열 (안전교육원 원장, 경영학 박사)
 

청년의 미래를 담보로 한 포퓰리즘의 끝

― 돈은 오늘 뿌리고, 청구서는 내일 청년에게 보내는 이재명식 정치경제학

 

Ⅰ. 불타는 프랑스, 돈 뿌리는 정치의 청구서

 

2026년 10월, 프랑스 리모주의 유서 깊은 시청사가 화재로 큰 피해를 보았다. 이 사건을 프랑스의 복지정책이나 재정 위기 탓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랑스의 현실은 정치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경고를 던진다.

 

프랑스의 2024년 공공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57.2%에 달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반정부 총부채가 2026년 GDP의 119.1%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가 많다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출에 걸맞은 성과와 재원을 확보하지 못할 때다.

 

정치가 오늘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내일의 부담을 외면하면, 결국 청구서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대한민국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의 손은 유난히 커진다. 세금을 걷을 때는 사채업자처럼 하더니 돈을 나눠 줄 때는 통이 커진다. 어디서 돈이 나왔는지,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지는 쏙 뺀다. 정치인의 생색은 생방송으로 중계되지만 미래 세대의 부담은 재방송조차 되지 않는다.

 

Ⅱ. 추경의 마술, 숫자는 커지고 책임은 작아진다.

 

이재명 정부의 재정 운용은 경기 부양과 민생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2025년 5월에는 13조 8,000억 원 규모의 1차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됐고, 같은 해 6월 정부는 30조 5,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제시했다. 2차 추경안에는 추가 지출 20조 2,000억 원과 세입 부족분 보전 10조 3,000억 원이 포함됐다.

 

물론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을 투입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투입한 돈이 얼마나 효과를 냈느냐는 것이다. 예산을 편성했다는 사실은 정책의 출발이지 성공의 증명서가 아니다. 2026년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경도 따져볼 대목이 있다. 정부는 초과 세수 25조 2,000억 원과 기금 여유 재원 1조 원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신규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추경을 전부 빚으로 조달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국채를 새로 찍지 않았다고 재정 운용에 대한 검증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초과 세수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는 화수분이 아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늘었다면 그 재원을 어디에 쓰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지 따져야 한다.

 

바람이 불어 배가 나아갔다고 선장이 바람까지 만들어 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숫자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체력을 키우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추경 편성 기록의 기네스북이 아니라 추경 없이도 버틸 수 있는 경제다.

 

Ⅲ. 청년 예산은 늘었는데, 청년의 출근길은 왜 멀어지는가?

 

청년 정책의 성적표는 예산서가 아니라 취업 현장에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6년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4.0%로 전년 동월보다 1.1%포인트 하락했고, 청년층 실업률은 5.4%로 0.6%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전체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11만 3,000명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가 늘었다고 청년의 취업 사정까지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이 통계만으로 정부 정책이 청년 고용 부진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기와 산업 구조, 기업의 채용 방식, 인구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정부는 더 정교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청년 취업이 어려운데 지원금과 문화 패스의 항목만 늘어났다면, 그 사업이 실제 취업과 자립에 어떤 효과를 냈는지 공개해야 한다. 지원이 절실한 청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는 청년이 늘어나는 것과 좋은 일자리를 얻는 청년이 늘어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취업이라는 본시험은 그대로인데 시험장 밖에서 위로금만 나눠 준다면 정책 담당자는 만족할지 몰라도 청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청년 한 사람에게 얼마의 혜택을 제공했다고 자랑한다면 질문은 간단하다.

 

그 혜택으로 청년의 소득과 고용 전망은 얼마나 개선됐는가. 재정 지원의 효과가 불분명하고 장기적인 부담만 늘어난다면 미래 세대는 혜택과 비용을 함께 떠안게 된다. 오늘은 청년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내일은 청년에게 계산서를 내미는 정치, 이런 모순을 풍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풍자하겠는가.

 

Ⅳ. 정년은 연장하고 채용문은 닫는다면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시장 구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고령층의 계속근로와 청년층의 신규 채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중요한 정책 과제다. 한국은행의 2025년 연구는 2016년 정년 연장 이후의 노동시장 변화를 분석하면서, 임금체계 조정 없이 정년을 연장할 경우 고령층 고용 증가와 함께 청년층 고용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분석에서는 고령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가 0.4~1.5명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특정 시기와 제도 아래에서 도출된 연구 결과이지, 모든 정년 연장이 반드시 청년 일자리를 줄인다는 보편 법칙은 아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

 

고령층의 경험을 활용하면서 청년의 신규 채용 기회를 지키려면 임금체계 개편, 직무 중심 인사, 퇴직 후 재고용 등 여러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정년만 늘리고 기업의 비용 부담과 인사 제도는 그대로 둔다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노란봉투법 역시 노동자의 권리 보호라는 입법 취지와 함께 사용자 책임의 범위, 노사관계의 예측 가능성, 기업의 투자와 채용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법이 시행됐다는 사실만으로 긍정적 효과나 부정적 효과가 이미 입증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행 이후의 자료를 통해 실제 효과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노동시장 개혁을 말하려면 이해집단의 요구를 전달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청년과 고령층, 노동자와 기업이 함께 지속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기존 근로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 아직 취업하지 못한 청년에게 첫 번째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도 중요하다. 성벽 안의 사람에게만 안전을 보장하고 성벽 밖의 청년에게 입장권 대신 지원금을 건네는 정책이라면, 그것은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유지한 것이다.

 

Ⅴ. 돈을 나눠 주는 정치에서 미래를 열어주는 정치로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지원금의 액수를 겨루는 정치가 아니다. 청년이 일자리를 얻고, 기업이 투자하며, 노동시장이 새로운 인재에게 문을 열고, 국가 재정이 다음 세대의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치다.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는 정교하게 지원하되, 일회성 지출이 구조개혁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재정 사업의 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실적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조정하며,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힐 때는 경기 대응과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기업의 채용과 투자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정비하고, 노동시장에는 유연성과 안전망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청년 정책의 성적표도 투입 예산이 아니라 취업률, 임금, 고용의 질, 주거와 자립의 가능성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는다. 지원금의 규모를 얼마나 늘렸는지가 아니라, 그 돈으로 청년의 미래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 추경을 편성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지출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기업의 채용 여력을 확보하고, 고령층의 계속근로를 지원하면서도 청년의 진입 기회를 지킬 구체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는가?

 

정치인은 오늘의 국민에게 희망을 줄 책임이 있지만, 내일의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길 권리는 없다. 정부가 청년의 이름으로 돈을 쓰면서 청년의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을 미룬다면, 지원은 선심으로 끝나고 문제는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고 정책의 효과는 오래 남는다.

 

박수는 선거가 끝나면 멎지만 잘못 설계된 제도의 비용은 그 뒤에도 이어진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용돈이 아니라 내일의 일자리다. 정부가 자랑해야 할 것은 나눠 준 돈의 액수가 아니라 청년이 지원금 없이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만든 성과다.

 

청년을 위한다는 말이 청년의 미래를 대신할 수는 없다. 포퓰리즘의 진짜 청구서는 예산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기회를 얻지 못한 청년의 시간과 사라진 성장의 가능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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