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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마셨냐?” - 남편이 아내에게 금주를 약속했지만 작심삼일도 못 견디고 다시금 만취해 귀가하여 변명하는 모습을 이미지로 생성 (구글 제미나이) |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혹은 자신의 불찰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지인에게 급하게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미안함에 안절부절못하는 채무자의 심정, 마감 기한이 한참 지났음에도 완성되지 않은 원고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기자나 작가의 난감함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봄 직한 삶의 그늘이다.
어디 그뿐인가. 평소 두주불사(頭酒不辭)로 이름난 남편이 이번만큼은 아내에게 술을 끊겠노라 호언장담해 놓고, 작심삼일은커녕 며칠 만에 만취해 비틀거리며 귀가했을 때 느끼는 민망함과 죄책감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관계를 회복하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진정성(眞正性)’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진정성 없는 겉치레 사과로 오히려 상대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순직 소방관의 빈소를 찾았던 한 지자체장의 “사과를 바라니까 사과를 한다”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참사 앞에서 자식을, 동료를 잃은 유가족과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기는커녕, 오직 질타를 피하기 위한 ‘수동적 면피’로서 사과를 뱉어낸 것이다.
이 황당한 발언을 접한 대중의 반응은 한마디로 “말이야, 방구야”였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항문에서 나오는 방귀에 비유한 이 통속적인 표현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극도의 허탈함과 분노를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방귀는 아무런 영혼이나 의도 없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가스에 불과하다. 의지와 책임감이 담기지 않은 사과 역시 악취만 풍기는 가스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사과(謝過)는 한자 뜻 그대로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다. 사과의 주체는 ‘나의 잘못’이어야 하고, 사과의 목적은 ‘상대의 마음에 대한 위로’여야 한다.
하지만 진정성이 빠진 사과는 잠시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영혼 없는 기교이거나,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최소화하려는 얄팍한 계산에 불과하다. “바라니까 사과한다”라는 식의 태도는 사과받는 상대를 설득하기는커녕, 자신의 오만함과 무책임함을 온 천하에 자인한 꼴이다.
또한 이는 안하무인의 또 다른 인간성까지 간파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살면서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렇기에 진정한 용기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고개 숙일 줄 아는 데서 나온다.
빚을 제때 갚지 못했다면 변명 대신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구체적인 변제 계획을 전달해야 한다. 마감을 어겼다면 거창한 이유를 대기보다 성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최대한 빠른 송고로 보답해야 한다.
아내와의 약속을 어겼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뉘우쳐야 한다. 진정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강력한 교량이자, 무너진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열쇠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다 글이 되고 뜻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나쁜 냄새에 불과하다. 세상을 살아갈수록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과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며, 무엇보다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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