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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량 학생’으로 전락하는 것일까

나를 존중하고 기억해 주기 때문

작성일 : 2026.10.21 06:06 수정일 : 2026.10.21 07:49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email protected])

 

다음 달 초, 모 문학단체 회원들의 공동 출간기념회 및 시상식이 열린다는 공지가 단톡방에 올라왔다. 반가운 마음에 “축하드립니다”라고 댓글을 남겼더니 총무님께서 곧바로 답을 주셨다.

 

“홍 기자님, 고맙습니다. 올해도 참석하시어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서둘러 달력을 펼쳐 보았다. 날짜를 확인하니 목요일이었다. 그런데 행사 시간이 오후 7시부터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였다. 학교 수업과 겹친다는 것.

 

잠시 고민했다. 학교에 갈 것인가, 행사장에 갈 것인가. 결국 마음은 행사장 쪽에 닻을 내렸다. 학교는 매일 가지만 출간기념회와 시상식은 일 년에 한 번뿐이다. 게다가 그곳에는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날만큼은 ‘땡땡이치고’ 학교에 결석하는 수밖에 별다른 묘수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쯤 되면 나는 모범생(?)에서 졸지에 ‘불량 학생’으로 전락한다.

 

‘땡땡이치다’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꾀를 부려 게으름을 피우는 행위를 뜻한다. 수업이나 자율학습, 학원, 근무시간처럼 정해진 의무를 빼먹을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평소에는 성실하게 등교하면서 굳이 그날 하루는 빠져야 하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고 기억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으로 마음이 향한다.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때로는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더 큰 힘이 된다. 나 역시 그렇다.

 

취재기자에게 기사는 단순히 글 한 편을 작성하는 일이 아니다. 현장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기쁨과 감동을 기록하는 일이다. 특히 내가 쓴 기사를 통해 누군가의 노력과 성취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 또한 기자로서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올해도 참석해 달라.”라는 말을 들으면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진다. 지난해에도 왔고, 올해도 기억해 주며, 내년에도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말 속에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에게 가장 서운한 것은 무시당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가장 기분 좋은 일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것이다. 이름을 기억해 주고, 지난 일을 기억해 주고,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기억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다시 움직일 힘을 얻는다.

 

나는 올해 67세의 야간 중학생이다.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교과서를 펴고 시험을 치른다. 그러니 목요일 하루 수업을 빠진다면 분명 ‘결석생’이다.

 

하지만 그날 행사장에서는 또 다른 역할을 맡는다. 학생이 아니라 기자다. 그리고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 잠시 ‘불량 학생’이 되기로 했다.

 

물론 결석이 무조건 좋은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학생에게 학교는 소중한 배움의 현장이다. 다만 인생에는 교과서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공부도 있다. 사람을 만나고, 축하하고, 취재하고,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 역시 나에게는 귀중한 공부다.

 

더구나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안이자 동력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메라와 수첩을 챙긴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그날 하루쯤은 괜찮지 않을까. 학교에서는 잠시 ‘땡땡이치는 불량 학생’이 되더라도, 행사장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한 기자가 되어보련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에서 다시 힘을 얻는다. 나에게는 그것이 취재이고, 글이며, 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