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강”

작성일 : 2024-07-05 19:38 수정일 : 2024-07-06 19:51 작성자 : 이갑선 장로 (lgs9530@gmail.com)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14~15절)

 

아프리카에 ‘마토보’라는 부족이 있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사람을 죽인 살인범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깊은 강물에 빠뜨려 죽입니다. 비록 수영에 능숙해서 스스로 헤엄쳐 나와도 다시 강물로 밀어 넣습니다. 언제까지요? 지쳐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런데 살인범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 것은 피해자의 가족 중에 누군가가 물속에 뛰어들어 살인범 거의 죽기 직전에 그 살인범을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처음에는 서서히 죽어가는 살인범을 지켜보다가 나중에는 누군가가 뛰어들어 구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용서하는 마음만이 평생 치유 못할 상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처방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강의 이름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용서의 강”이라 부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용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가슴 깊이 깨닫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산길을 가다가 독사에 물렸다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가던 길을 멈추고 상처 부위를 빨리 묶어서 독이 퍼지지 않게 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나를 문 독사를 잡아 죽이려고 뒤쫓아가는 일일까요? 만일 괘씸한 생각에 독사를 뒤쫓아 간다면 곧 우리몸 전체로 독이 퍼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독사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 안에서 생기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독사를 잡는 것보다 치료가 우선입니다 그래야 내가 삽니다. 그렇게 보면 용서의 1차 수혜자 내지 최대 수혜자는 용서받는 상대방이 아니고 용서를 실천하는 바로 나 자신인 셈입니다. 이것이 용서의 신비가 아닐까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누군가를 용서하고, 또 때로는 용서를 구하기도 합니다. 용서는 개인적인 분노나 원한, 오해, 갈등과 관련된 것일 때도 있고 사회적 이슈, 정의에 관한 것일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 차원의 용서와 공동체, 사회적 차원의 용서가 중첩되는 경우도 있지요.

 

하나님의 마음은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열고 열어 가까이 가야 합니다.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데 방해가 되었던 모든 일들을 없이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