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7-11 21:16 수정일 : 2024-07-12 22:20 작성자 : 최상현 (counselorsam@daum.net)
counselorsam과 함께 가슴으로 읽는 시 이야기 2
주제 : 하찮은 존재는 없다
종이컵 / 김미옥
그대 마른 입술 한 번 적시고
끝나는 생이지만
미련 같은 건 키우지 않습니다
살가운 입맞춤의 순간이 곧 생의 절정
장식장 높이 앉아 지레 늙어가는
금박 무늬 잔도 부럽지 않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손 내밀 수 있는
친근함이 나의 매력
날로 늘어가는 사랑 어쩌지 못합니다
다만 짧지만 뜨거운 만남
따스하게 간직하고 갈 수 있도록
부디 뒷모습 추하지 않게 보내주시길
이 세상에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자연물인 식물, 동물, 미생물, 무생물이 있고, 문명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물건들도 많다.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존재하는 것들은 생명이 있고, 가치와 의미가 있고, 존재 목적이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호기심이나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어떤 것을 더 귀하게 여기고 덜 귀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기가 즐겨 쓰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미술가는 그림이나 조각이나 사진으로, 음악가는 노래로,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는 자세한 이야기로 표현한다. 시인은 시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시인은 자기의 감각 범위 안에 들어오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나 생각이든 시로 표현하려고 하는 본능과 재능을 가지고 있고, 자기만의 특별한 감성으로 재미있고 의미있게 그것들을 표현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즐겁게 한다. 시인은 그것을 사명이나 숙명으로 여기고 즐겁게, 그리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시를 쓴다. 독자는 그런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울고 웃는다.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찾으면서 생각하고 감동하게 된다.
김미옥 시인은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작은 물체인 종이컵에 생명(감정)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존재감을 부여한다. 독자들은 누구나 길지 않고 어렵지 않은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에 와닿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대상인 사물의 존재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의미, 사람의 존재 의미도 생각할 것이다. 특별히 자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시를 읽으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자존감이 약하여 자신을 학대하고 아프게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 시가 치유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시인은 우리가 하찮은 존재로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어 이렇게 의미와 감동을 주고 있다. 다음 두 편의 시를 함께 읽어보자.
박스테이프 / 전하라
그는 절대로 본 것을 말하지 않는다
또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
끝까지 따라다니며 본분을 지켜
주어진 소명을 다한다
된장, 깍두기, 책에 이르기까지
맛보거나 읽지 않고도
상대방을 존중하며 지켜준다
결국 거칠게 대접받고
폐인 취급을 당할지라도
늘 불려 다니길 원한다
생활양식의 변화로 택배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택배 물품을 포장할 때에 꼭 필요한 물건이 박스테이프다. 박스테이프 역시 작지만 매우 소중한 물건이다. 시인은 이 박스테이프를 의인화하여 그의 바른 자세, 역할, 그리고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고 평가하며 살아가기 쉽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는 것, 누구나 본분을 지키고 소명을 다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지켜주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이 시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다.
이 시를 가슴으로 읽는다면 누구나 자신만을 귀하게 여기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이 세상에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자존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시를 지은 시인의 뜻이고 이 시의 가치일 것이다.
걸레 / 이하재
때 묻어 더러워진 곳을
온몸으로 살이 해지도록
문지르고 닦아내는 걸레
너덜너덜 걸레 같은 세상
제 한 몸 더럽혀 맑게 하니
세상보다 아름다운 걸레
방망이 모진 매를 맞고
가득 눈물 머금어 처연한
이름보다 향기로운 걸레
이하재 시인은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하였고, 지금도 결코 편안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시를 쓰는 귀한 분이다. 시인은 <걸레>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있다. 자신처럼 이 시대에 어렵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온몸으로 살이 해지도록’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삶, 그래서 ‘가득 눈물 머금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갖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세상에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잘난 사람은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어렵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과분한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겠다.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이 고된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이 시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세상보다 아름다운' 존재, ‘이름보다 향기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헌신과 희생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보다 안정된 삶을 누리며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counselorsam 최상현(시인, 시애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