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7-21 20:24 수정일 : 2024-07-21 22:22 작성자 : 최상현 (counselorsam@daum.net)
counselorsam과 함께 가슴으로 읽는 시 이야기 3
주제 : 그리움의 뿌리를 찾아서
- ‘대청호 시인’ 김선자의 시집 《대청호 연가》를 읽으면서
널 품고도 남을 가슴이라면
널 잊고도 남을 세월이라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실향의 아픔을 달래주는
깊고 넓은 가슴을 만난다.
하늘을 닮아서일까
순박한 사람들이
떼어놓고 간 속정 때문일까
수많은 애환을 품어 안고도
해맑게 웃기만 하는
대청호, 너를 닮고 싶다.
저기 저 은빛 물비늘에
얼룩진 마음을 내려놓는다.
- <대청호 연가 • 2> 전문
1. 그리움이란 무엇인가?
그리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 이다. 어떤 까닭으로든 사람은 누구나 그리움을 품고 산다. 그리움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할 수 없고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도 없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정서이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그리움을 안고, 그리움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고성현 시인은 ‘삶은 그리움/ 그리움 때문에 살고/ 그리워하려고 산다.’(<삶은>, 고성현 시 일부)라고 선언한다.
그리움의 대상은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아직 오지 않은 일, 어쩌면 영원히 올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어제가 그리운 것은/ 오늘이 힘들고 내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만/ 오늘을 보내고 나면/ 또 그렇게 그리움만 쌓인다.’(<삶>, 최상현 시 일부). 그리움의 대상은 지금 나에게, 내 가까이에 없는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이루지 못하여 아쉬운 일, 그래서 안타깝고 슬픈 일일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람이나 추억이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구체적인 사물이 그리움의 대상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그리움은 안타깝고 아쉽고 애처롭고 슬픈 일이나 기억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정서이지만 어두운 것,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슬픔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그리움일지라도 그 그리움은 슬픔을 견디고 이겨내고 새로운 기쁨을 찾아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기에 시인들은 그리움을 많이 노래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다.
2. 그리움의 뿌리는 무엇일까?
앞서 말한 대로 그리움의 대상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여러 가지 대상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그리움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삶의 터전이 다르고 삶의 시간이 다르고 삶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찍 이별한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큰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어릴 적의 추억이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 먼 타향이나 타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떠나온 고향이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매우 클 것이다.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동경(憧憬)도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의 대상이 이렇게 다양한데 그 뿌리는 무엇일까? 그리움의 원천, 또는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떤 전설에서는 사람은 원래 자웅동체(雌雄同體)로 창조되었는데 그것을 절반으로 나누어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천적으로 서로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설이나 신화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다.
구약성경 전도서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한다. 다른 번역에는 그것을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이라고도 하고,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그냥 ‘영원성’(eternity)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리움은 영원, 또는 영원성에 대한 갈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영원은 유한한 인간이 상상할 수는 있지만 온전히 알 수는 없고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인데, 알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기에 우리는 상상하고 더욱 그리워하는 것이다..
3. 대청호 시인 김선자
대청호는 중부지방의 용수 확보를 위해 1975년에 착공하여 1980년에 완공한 대청댐이 금강 중류의 물을 막아 생긴 인공호수로서 소양호, 충주호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지금은 대청호 주변에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져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이 호수로 인하여 옛 충청남도 대덕군(현재 대전광역시 동구, 대덕구 일부)과 충청북도 청원군(현재 청주시), 옥천군, 보은군에 속해 있던 여러 마을 4,075세대, 26,000여 명의 원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중에도 옛 대덕군 동면 지역은 면소재지와 초등학교를 포함한 가장 많은 땅이 물에 잠기고 가장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났다.
김선자 시인의 고향도 바로 이곳 대덕군 동면 마산리였다. 고향 땅과 집, 다니던 초등학교까지, 그리고 함께 살던 이웃과 친구들을 잃은 시인의 애달픈 마음은 다른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리라. 고향을 잃은 주민들 일부는 고향 가까운 언덕이나 골짜기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그나마 고향땅을 바라보며 살아왔을 것이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찾아 도시로 떠났을 것이다. 가까이에 남은 사람이든 멀리 떠난 사람이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움에 묻고 가슴앓이를 하면서 살아오고 있을 것이다.
김선자 시인은 대청호에 잠긴 고향을 그리워하며 시를 써서 《대청호 연가》(오늘의문학사, 2016.10.)를 첫 시집으로 냈다. 《대청호 연가》에는 같은 제목의 연작시 6편과 함께 대청호 속에 잠긴 고향 풍경을 그린 <고향> 4편, 고향에서 자라면서 보고 경험한 자연 풍경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 계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고향을 잃고 님을 잃고 신산하게 살아온, 그러면서도 어려움을 이기고 꿈을 키우면서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시인 자신의 삶의 풍경과 심경을 고백하듯 노래하는 시들이 여러 편 담겨 있다. 시집을 해설한 문학평론가 리헌석(시인, 오늘의문학사 대표, 계간 《문학사랑》 발행인)님은 김선자 시인의 시집 해설에서 ‘고통을 승화한 애이불비의 미학’으로 말씀하셨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평론이다. 나는 김선자 시인의 시들 속에서 ‘그리움이 머무는 곳’, ‘그리움 속에서 찾은 새 희망’을 읽고 있다.
4. 시 속으로
이제 김선자 시인의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글 머리에 소개한 <대청호 연가 · 2>는 이 시집의 표제시이다. ‘실향의 아픔’, ‘수많은 애환’, ‘얼룩진 마음’은 호수가 앗아간 고향으로 인하여 생긴 애달픈 현실이지만 시인은 고향을 앗아간 호수를 원망하지 않고 그 속에 그리움을 담고 그곳에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상실의 원인인 대청호를 ‘아픔을 달래주는’ 존재로 인정하고, ‘수많은 애환을 품어 안고도/ 해맑게 웃기만 하는/ 대청호, 너를 닮고 싶다’고 미화할 만큼 미움의 대상일 수 있는 대청호를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곱다.
윤슬 위를
날갯짓하며 뛰어노는 영혼
어린 시절
잃어버린 한쪽 고무신은
어느 용궁 속에 둥지를 틀었나.
내 반쪽을 찾아왔지만
대청호는 말하고 있네
말없이 돌아가라고.
- <대청호 연가 • 3> 부분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오기 어려운 이도 많겠지만 김선자 시인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그리울 때마다 고향을 찾아온다. 그리고 실향의 원인인 대청호를 미움 대신 사랑으로 품고 그 품에 안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고향은 마음의 고향일 뿐이다. 내가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라는 법은 없다. 시인은 대청호를 사랑하여 찾아오지만 대청호는 외면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한쪽 고무신’ 같은 허전한 마음 달래려 고향을 찾아왔지만 ‘말없이 돌아가라고’ 말하는 호수를 뒤로 하고 쓸쓸하게 발길을 돌리는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 그 쓸쓸함은 삶의 길이 녹록치 않아서 더욱 컸을 것이다.
대청호에 비가 내린다.
실향민이 된
질곡의 세월
타향에서 흘린 눈물
고향을 잊지 못해
골짜기를 거쳐
어두운 도시를 지나
대청호에 이른다.
사연은 다르지만
고난의 세월은 같기에
그 가슴도 하나가 되겠지
푸른 물 대청호야
네가 보고파
빗방울이 되어
한없이 호수를 채운다.
- <대청호 연가 • 4> 전문
쓸쓸하게 돌아선 고향이지만 고향은 영원한 고향이다. 특히 ‘질곡의 세월’을 타향에서 눈물 흘리며 살아온 이들에게 고향은 어머니의 품이며 영원한 안식처이다. ‘말없이 돌아가라고’한 대청호지만 시인은 고난의 세월을 살면서 ‘네가 보고파’ 푸른 물 대청호를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을 호수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한없이 쏟아 놓는다. 그렇게라도 시인은 삶의 아픔과 슬픔을 그리움으로 승화하고 눈물로 정화하여 자신을 달래고 위로를 받는다.
잊지 못할 아픔은 말 없는 물속에 던져 버리고
들꽃들 노래하는 호숫가에 하얀 집 짓고
나룻배 하나 띄워 함께 노 저으며
수채화 같은 삶을 엮어가야지
푸른 별들 소곤대는 밤
서리 내린 머리 주름진 얼굴 쓰다듬으며
한 세월 살아감에 감사하고
문풍지에 있는 바람도 서로 막아주며 살고 싶다
밤벌레 소리와 함께 옛 이야기 나누며
이젠 힘겹고 외로운 항해를 접고
이곳 달빛 내린 호숫가에 닻을 내려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아봤으면.
- <대청호 연가 • 5> 부분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을까? 시인은 ‘잊지 못할 아픔은 말 없는 물속에 던져 버리고’, ‘한 세월 살아감에 감사하고’, ‘이젠 힘겹고 외로운 항해를 접고’ 평안하게 살고 싶은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고향을 떠난 시인의 삶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잃어버린 고향, 힘겹게 살아온 삶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다시 고향 대청호에 정착하여 살고자 하는 소박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다.
새소리에 눈을 뜬 호수에
물안개가 기지개를 켜고
노닐고 있다.
안개 사이로 날고 있는
백로 한 쌍 위에도
이슬이 뒹굴고
주인 잃은 나룻배는
뭍에 등을 반쯤 기댄 채
외로운 몸짓으로 춤을 춘다.
태초의 시간
나신(裸身)으로 무희(舞戱)를 하는
영혼,
그 속에도
영글어 가는 꿈이 있으니
안개 사라지는 순간
작은 내 소망도 날개를 펴겠지.
- <대청호 연가 • 6> 전문
<대청호 연가> 여섯 편의 결말이다. 고향을 물에 담가버린 대청호, 시인과 함께 다른 많은 사람의 삶의 터전을 앗아간 대청호, 그래도 그리워 찾아왔지만 외면하던 대청호, 그래서 빗방울처럼 눈물을 흘려야 했던 대청호였다.
그러나 시인의 대청호에 대한 그리움은 사랑으로 무르익어 다시 찾을 수 있다. 시인은 고향 잃은 슬픔 속에서 수많은 애환과 질곡을 겪으며 살아온 타향살이를 꿋꿋하게 이겨내며 삶을 아름답게 일구어왔다. 이제는 대청호가 나를 반겨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대청호를 사랑하여 대청호를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청호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겠지만 ‘그 속에도/ 영글어 가는 꿈이 있으니/ 안개 사라지는 순간/ 작은 내 소망도 날개를 펴겠지.’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은 새롭고 희망차다. 이제 시인의 꿈이 영글어 가고 안개는 사라지고 작은 소망은 날개를 펼 것이다. 그리고 그리움과 아픔을 이겨내며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은 대청호를 사랑하는 시인, 대청호가 사랑하는 시인, ‘그리움이 머무는 곳’에서 ‘그리움 속에서 찾은 새 희망’을 마음껏 노래하는 ‘대청호 시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counselorsam 최상현(시인, 시애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