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4-07-29 22:46 수정일 : 2024-07-30 05:24 작성자 : 이갑선 칼럼니스트 (lgs9580@gmail.com)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침 이슬' 노래가 이렇게 슬픈 곡이었나?. 노래는 힘이 세다. 모든 노래는 소유권이 있게 마련이다.
저작권은 노래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한다. 남의 노래를 작은 부분이라도 흉내 내는 경우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은 모든 음률(音律)에는 만든 사람의 소리와 가락이라는 음악적 지문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작물을 베끼는 행위를 표절(剽竊)이라고 한다. 한국인치고 ‘아침이슬’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71년 음반으로 발매되고, 또 금지곡이 되고를 반복하면서 점점 국민가요 반열에 올랐다. 대학 캠퍼스와 골목에서 불리던 ‘아침이슬’이 전 국민의 애창곡으로 인정받은 것은 1987년 6월 항쟁의 거리와 고 이한열 장례식이 열린 시청 앞 광장에서ㅣ라고 한다.
얼마 전‘아침이슬’을 만든 김민기 선생이 세상과 작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을 배웅하던 사람들은 대학로 소극장 옛 학전 앞마당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
그날로 50년 이상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아침이슬’을 불렀고, 위로받았으며, 어깨를 겯고 나아갔다. ‘아침이슬’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상징이었고, 시대의 이미지였다. ‘아침이슬’은 김민기 선생이 지었으나, 모두가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노래가 있을까?
사람들은 종일 음악을 소비한다. 만약 음악이 없다면 라디오방송이 가능이나 할까? 행여 노래가 빈곤하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부대낄까? 어쩌면 노래가 과잉인 까닭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목마름이 크기 때문이다. 노래가 유행보다 더 빠르게 낭비되는 배경은 안성맞춤의 인생 곳을 찾기 어려운 탓일 것이다.
인생의 곡절을 우려내고, 내 이야기를 세상사의 일부로 만드는 그런 노래는 얼마나 귀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