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병도지는 광복절

작성일 : 2024-08-11 08:55 수정일 : 2024-08-11 12:58 작성자 : 이갑선 (lgs9580@gmail.com)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해방된 지 79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은커녕, 그동안 습관적으로 하던 면구스런 언사도 중단한 채, 종군위안부와 강제 노역의 역사를 부인하고, 심지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

 

이젠 대놓고 망언과 혐한(嫌韓)으로 대응한다. 참 위험하고 고약한 이웃이다. 곤혹스러운 존재는 일본만이 아니다. 우리 내부의 현실은 더욱 당혹스럽다. 단톡방에 올라온 독립기념관 새 관장에 대한 임명철회 구글폼에 즉각 서명한 이유다. ​ ‘독립기념관을 일제강점기념관으로 만들려는거냐’라고 탄식하는 시민적 분노가 3.1만세운동 전야 분위기다. 게다가 새로 임명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국사편찬위원원회 위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의 인물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 한결같이 헌법이 규정한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고, 일제 강점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올해 광복절은 ‘역사전쟁 시즌2’를 맞고 있다. 현 정권의 대일외교는 국익과 국민의 자존심을 저버린지 오래다. ​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한 외교부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앞장서서 털어주고, 일본의 낯부끄러운 입장을 마사지하기에 급급하였다. 오죽하면 광복회장은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였다. ​ 2015년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다’는 국민적 역풍에 부딪쳐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그 전면에 섰던 뉴라이트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해방 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친일 청산이었다. ​ 정부 수립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결국 당사자들의 반발과 방해로 실패로 돌아갔다. 뼈아픈 것은 친일 부역자들에게 준엄한 심판은커녕, 면죄부를 주었고, 친일 세력과 그 후손이 지금껏 대한민국 지배 세력의 일부가 되어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 그렇다고 친일 청산의 과제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극우세력의 건국절 논란에서 보듯 친일 청산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할 시대정신이다.

 

최근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적 논란은 국가의 자기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한국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 책임을 판결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이 거부하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이유로 전범기업을 대신해 제3의 별도 재단을 만들어 배상하겠다는 해법을 제시하였다. 재단에는 애꿋은 한국 기업만 참여한다.

 

​ 일본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조선인 군무원 수는 육군 7만 424명, 해군 8만 4,483명으로 약 15만 5천 명에 이른다. 또한 징병 조선인은 20만 9,279명이고, 징용 조선인은 72만 4,787명이다. 1945년 현재, 모두 110만 명이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것이다. 이들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전쟁을 수행하거나, 지원해야 했다. ​ 그리고 일본과 함께 종전 패배의 굴레를 뒤집어 썼다. 그때 한반도 인구가 지금 남한 인구의 절반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통계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고난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2023년 1월,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추천서를 제출하였다. ​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2024.7.27.)에서 일본 정부 주유네스코 대사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를 포함해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전시 전략 및 시설을 만들기까지 한국과 긴밀히 대화했다”고 하였다. ​

 

이러한 발언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일본 정부는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때 ‘조선인 강제노역 등 군함도의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했던 약속도 7년 넘게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한국 외교부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찬성표를 던졌다. ​ 한국의 저자세 외교가 다시 한번 굴욕외교를 낳은 것이다.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일본의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은 우리 정부가 용인한 결과다.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역사가 계속되는 한 외교적 참사는 반복될 것이다. ​ 광복절을 앞두고 잠을 설치는 것은 열대야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 세대가 겪는 홧병은 반드시 다가올 심판으로 귀결될 것이다. 글 :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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