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의 만남 / 수필

수필 '아버지' / 강형기

작성일 : 2024-09-25 22:09 수정일 : 2024-09-25 22:45 작성자 : 강형기 기자 (the3do@naver.com)

 

< 아버지 >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딸이며 아들이다. 나 또한 아버지의 아들이고, 내가 아버지가 될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아버지란 이름이 참 외롭고 힘든 삶의 직업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쓸때 깊은 감사함과 속울음을 닦을 마음을 두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땐 누구보다 크고 강하시던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 본인만의 취미생활도 없고 약속도 늘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본인의 삶을 내려놓고 나의 삶을 어깨에 짊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였다는 걸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나 깨달았다.

 

어머니와 달리 화 한번 내신 적 없으셨던 늘 인자하셨던 아버지의 아침 인사 속 미소는 어렸을때의 내가 간지럽히는 햇살 아래 눈을 뜨면 보는 제일 첫 장면이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나에게 처음 화를 내셨던 기억이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당시 내가 자주 놀러가던 윗집에 또래 친구가 있었는데 같이 놀다 내가 친구네 밥상을 발로 밟아 반 토막을 내놓은 사건이 있었다. 그 일로 아마 친구네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이 다투셨던 모양이다. 밥상을 반 토막 내놓고 집으로 도망 온 나로 인한 어른들의 싸움에 아버지가 처음으로 아침 인사를 해주지 않고 나를 외면했던 그 화난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다. 살림살이 하나가 소중했던 80년대의 가족 밥상을 박살 내버리고 달아났으니 그날 저녁 친구네 가족은 방바닥에 밥을 놓고 먹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때 딱 한 번 아버지가 회초리를 든 기억 말곤 나에게 화를 내신 기억이 내 삶에선 없다.

 

철 없던 학창시절 공부를 참 못했던 나에게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어렸을 땐 오히려 옆에서 큰 소리로 화내시는 어머니보단 아무 말 안 하시는 아버지가 더 무서웠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께 조금씩 아들로써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단 생각이 든 게 고등학생이 되고나서였다. 나의 고등학교에는 꽤 불우한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나 어머니가 안 계시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의 자라 온 가정환경이 정말 좋았구나를 깨달았던 시기였다.

지금도 기억나는건.

 

'너네 집에 피아노가 있어?'

'너 그렇게 좋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어?'

'너 만의 방이 있다고?'

 

난 이런 놀라움을 동반한 질문에 대해  '우리 집이 그렇게 부자가 아닌데' 라는 생각보단 나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이토록 애쓰시면서 살아오셨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70세를 넘기고 계시는 아버지는 나를 결혼시키기 위해 뭐든지 계속 해 주시려 하신다. 나는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도 손을 벌린다는게 너무나 죄송스러워 계속 거절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같은 점이 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평생을 몸 바쳐 가족의 삶이란 엄청난 무게를 혼자만의 지게에 지고 퇴직을 한 나이에도 계속해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게 바로 '아버지' 란 이름이다.

 

몇 년 전 아버지가 크게 아프셔서 두 달 가까이 입원하신 적이 있었다. 백혈병 증상이 의심되어 혈액병동에 입원 하셨었다. 나는 내색은 별로 안 했지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가슴 졸이는 두달여간이였다. 다행이 간 쪽에 문제가 있어 내과로 옮겨 회복하셨지만 그 후로 내가 부모님께 하는 잔소리가 하나 생겼다. 전원주택을 짓고 밭일을 소일거리로 하시는 부모님께 나는 늘  '농사 지으려 하지 말고 재미로만 하세요' 란 말을 만날 때마다 하게 되었다. 이젠 어쩌면 늦어버렸겠지만 아버지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랄 뿐이다.

 

얼마 전 아는 지인분의 아버지가 오랜 지병 끝에 돌아가셨다. SNS에 올라 온 소식을 접하며 나는 짧은 위로의 글로 대신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나의 아버지였다면... 이런 몹쓸 상상이 스쳐지나가면서 나도 그분과 함께 울었다. 만나본 적 없지만 온라인상에서 꽤 친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가 된 그분의 큰 슬픔을 보았을 때 그분의 아버지 또한 가족을 위해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으리란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란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가 많이 실추되어가는 요즘 시대가 참 안타깝다. 대화가 단절되어가는 요즘 가족들의 저녁시간이 너무 안타깝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스마트폰의 재미가 더 필요해진 요즘 아이들. 가끔 뉴스에서 보는 부모 자식간의 문제점들을 보며 내가 지금의 나라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자신은 메말라 가면서 나의 거름이 되어주신 아버지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또 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나의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다. 아버지처럼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건 정말 힘든 거란 걸 다시금 깨닫는 오늘이다.

 

 

 

선진문학작가협회 강형기

 

 

 

 

 

 

 

책·문학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