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의 만남 / 수필

수필 『달팽이의 꿈』/ 강형기

작성일 : 2024-10-18 14:16 수정일 : 2024-10-18 15:57 작성자 : 강형기 기자 (the3do@naver.com)

 

『달팽이의 꿈』

 

 

어느새 사십 대를 넘어선지도 몇 년이 흘렀다.

가끔 누군가 만나면 지나온 세월과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꼭 나온다. 내가 이십대엔 사십대란 나이는 이미 가정을 꾸리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아놓을 나이였지만 사십대가 된 나는 지금 어릴적 꿈을 이루었나 생각해 보면 반은 이루었고 반은 아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처음부터 꿈이나 삶의 목표를 제대로 설정한 적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동안 정해놓은 인생의 방향에 한걸음 다가가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여 원하던 전공을 살려서 졸업 후 직업을 얻거나, 바로 사회 초년생으로 뛰어들어 경력을 쌓거나, 가업을 물려받는다든지.. 누가 시키기도 않았는데 성년이 되면서 모두 앞만 보며 달리기 시작한다. 나 또한 남들이 그렇게 달리니 당연하다는 듯 깊은 고민 없이 대학 진학을 선택하고 평소 좋아하던 컴퓨터게임 관련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과연 이 분야가 내 천직이라 생각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대학을 다니는 내내 그리고 졸업 후 게임회사에 개발자로 입사하고 일하는 시점까지 계속 이어졌다. 결국 나의 개발자 인생은 3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나는 그 후 대전으로 내려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내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꿈은 조금 남다르다. 어린이였을 때는 흔한 어른들의 질문인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이 세상의 셀 수 없이 많은 직업들 중 본인의 미래 목표에 대한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어른들의 대답에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고 과학자요. 대통령이요. 이런 식의 어쩔 수 없이 내놓는 답변뿐이었다. 2차 성장기에 접어들어 고등학생이 된 시기에도 내 꿈은 현실적이지 못했다. 내 집 마련. 결혼. 고소득 등 어른이 되면 당연하게 취할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목표가 아니라 환상이 되었고 당연히 더 높이 달아두었던 꿈들은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작은 조각들로 쪼개졌다. 그리고 나는 30대 중반을 넘기며 환상에서 깨어 꿈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다시 정했다.

 

지금 나는 내 꿈의 절반은 이루었고, 절반은 이루지 못했다.

나는 달팽이처럼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기에 나는 절반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 하나 짊어지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를 보면 내 삶이 가장 많이 투영되는 듯하다. 계속 앞만 보며 달리던 속도를 달팽이처럼 늦추었고, 그러자 달리기만 하느라 스쳐 지나가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의무에만 초점을 맞췄던 내 하루라는 시간을 쪼개어 나에게 초점을 돌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식습관과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는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던 시를 보게 되었다. 당장 내가 처해진 상황에 대해 공감해 주며 더불어 희망을 받게 된 시였다. 그리고 나는 가슴속 끌어 오르는 낯선 울림을 느끼게 되었고, 진정 내 꿈 하나를 찾게 되었다. 환상이나 바램만 포장된 꿈이 아닌 진정 내가 하고 싶고 꼭 해내고 싶었던 꿈 하나. 그 꿈을 찾게 되었고 나아갈 길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절반의 꿈을 이루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작가라는 타이틀 속에서 수필을 써 내려가고 있다. 무언가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것을 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 ‘행복이것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최종 목표가 아닐까. 그 꿈을 나는 벌써 절반을 이룬 셈이다. 부끄러운 필력이지만 천천히 나아가며 성장해가고 싶다. 정상이라는 곳은 나란히 서면 결국 같은 높이인 것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서둘러 달렸을까. 달리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쳐온 이 세상의 아름다움들이 너무 아깝다.

 

멈춤보다 빠른 달팽이의 느림은 시들지 않는다. 세월하나 등에 짊어지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의 느림은 포기하고 주저앉는 멈춤에 비하면 빛의 속도다. 힘들면 때론 쉬어가도 좋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달팽이를 닮고 나니 내 인생에 하나씩 나아가야 할 길이 열렸고, 지금의 나는 건축 디자이너이자 시인. 수필가로 활동하며 천천히 전진하고 있다. 남들에 비하면 늦은 나이에 시작한 모든 것들이지만 느리더라도 낮더라도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며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나머지 절반의 꿈도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느려도 좋고, 낮아도 좋다. 뒤쳐진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날개짓이 가장 아름답다.

 

 

강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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