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의 만남 / 수필

수필 『 멀지만 가까운 사랑 』/ 강형기

작성일 : 2024-11-26 21:43 수정일 : 2024-11-27 18:41 작성자 : 강형기 기자 (the3do@naver.com)

멀지만 가까운 사랑

 

 

 조금 전 우체부가 다녀갔다. 우체부가 다녀가면 아득했던 옛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이야기는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의 나의 특별했던 기억이다. 

 

그 날도 우체부가 다녀갔다. 나처럼 길거리에서 만나도 인사할 정도로 거주지 동네를 담당하시는 우체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까란 생각이 든다친해진 계기는 내게 오는 국외 소포 때문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국외 소포에는 항상 집 주소의 마지막 자리가 빠져있었다국내에서 보내는 해외 EMS 소포의 경우 전자 문서가 부착되지만 일본에서 오는 소포에는 특이하게 주소가 수기로 작성되어 있다그래서인지 항상 주소의 마지막 숫자가 빠져있었다. 수기로 작성하다 항상 끝자리를 빼먹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우체부는 내게 전화를 걸어 배달해 주시곤 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오신다.

 

대전에서도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조용한 우리 동네에서는 국외 소포가 이렇게 정기적으로 오는 일이 우체부 본인도 처음이시란다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농담으로 묻는 우체부에게 일본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오는 선물이라고 하니 우체부의 표정에는 신기함과 코로나 때문에 만날 수 없는 국제커플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쳐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한때 나는 이 말을 어느 정도 수긍하며 살아왔다일주일에도 여러 번 만날 수 있는 커플들도 싸우거나 결국 헤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자주 볼 수 없는 장거리 커플,국가를 넘나드는 초장거리 커플이 자주 만나는 커플들과 같은 사랑이 가능할까? 이것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나는 사랑에 대해 잘 몰랐던 거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땐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깨달음을 알려준 것이 일본에 사는 그녀였다나는 나이 40이 되어서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런 숭고한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사람들은 부모가 되어서야 그러한 사랑을 깨닫는다고 생각했지만 만나본 적도 없는 나에게 이러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 나는 실감이 안 날 때가 종종 있었다. 직장동료이며 인생 선배였던 부장님께 들은 말이 있다배우자를 만나게 되면 아, 이 사람이구나! 하고 느낌이 온단다. 그녀 또한 나를 봤을 때 그런 느낌이었을까인터넷 시대에 이성을 찾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고 쉬워져버렸다 나도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호기심에 접촉하였고 그녀의 진심을 의심했었다.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녀의 진심에 의심할 여지는 없어졌다. 가깝든 멀든,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여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자체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었다.

 

우리는 서로 소포를 보내면서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서로 달래주었고, 소포 속에는 항상 서툴게 한글로 쓴 편지가 들어있다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정성껏 그린듯한 글씨체를 달빛 그득 한 시간에 눈앞에 펼쳐놓는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아날로그 감성이라니본인의 진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가 서툴게 적은 글자 한자 한자에는 정성과 진심이 가득하다. 내가 보는 편지는 분명 서툴지만,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녀는 이렇게 평소 화상 전화와 앱을 통한 채팅으로 사랑을 전하며 편지로 아쉬운 내 마음에 쉼표를 찍어준다.

 

코로나 때문에 서로가 만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언제 만날 수 있을지는 알길 이 없었다그녀가 사는 미야자키는 한국의 제주도 같은 곳이고 일본에서도 가장 최남단 쪽에 위치하며 더운 지방에 속한다코로나 상황만 아니면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로 단 1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저가항공사를 통한다면 편도 비행기 요금도 십만 원 초반대의 부담 없는 금액이지만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3일을 간다고 가정했을 때 일본에서의 격리 기간과 귀국 후 격리 기간까지 생각한다면 직장인인 나와 그녀는 큰 각오를 해야 하는 현실이였다.

 

그 해 겨울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한파가 지속하고 있었다사람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방한 대책을 세우고 문과 창문도 꼭꼭 닫아둔다. 하지만 마음의 문까지 닫아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마음의 문을 닫아둔 사람들은 사랑의 노크 소리를 다른 소리로 착각한다. 상대방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려는 행위.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생각들이런 것들은 상대방에 대한 애착이 높아질수록 심해진다. 자신은 상대방을 위해 노력했으나 상대방이 몰라준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내가 그랬다. 나는 상대방에게 큰 사랑을 베풀었으나 나에게 오는 사랑은 적다고 생각했었다. SNS에서 다른 남성의 흔적을 발견하기만 해도 질투가 났고, 그녀를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사랑은 잘못된 애착이었다. 이 잘못된 애착이 집착으로 바뀌게 되면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여 데이트 폭력 같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끔 그런 안 좋은 뉴스를 접하면서 나와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희미했지만 점점 밝아져 보이는 정신적 사랑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길 바래본다.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숭고함을 배우기까지 나는 40년이 걸렸다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며,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이해가 필요하다. 주변에 물론 우려하는 시선들도 있다우려하는 시선들 또한 경험하지 못해서 나오는 스스로의 예측들이 섞여 있고, 직접 또는 간접 경험에서 나오는 회상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본다. 내 마음부터 문을 열어 나오는 온기로 상대방의 추위를 녹여줄 수 있다면 분명 사랑은 따뜻해질 것이다바램과 만족이 아니라 이해와 온기를 품은 대화와 믿음이 필요한 때다.

 

사랑을 베풀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을 받아야 사랑할 줄 알게 되며, 그렇게 완성된 사랑이 곧 운명이라고 생각한다존재하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게 될 때, 겨울이 깊으면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고, 산봉우리에 걸린 석양빛이 마지막까지 온 힘으로 어둠을 밀쳐내는 세상을 향한 태양의 뜨거운 사랑이란 걸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사랑에 빠진 순간이다. 그 당시 내가 했던 사랑 또한 운명일지 아닐지는 그 정답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내 눈앞의 세상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그리고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으며 그날도 편지를 썼다. 

 

돌이켜 보면 참 특별한 1년여간의 추억이였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정신적으로만 감정을 느꼈던 시간이였다. 매일 화상통화를 하면서 추억을 쌓으며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당시 끝이 보이지않는 코로나사태 속에서 결국 우리 둘은 지쳐버렸다. 결국 단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채 끝난 사랑을 주변사람들은 그걸 사귀었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말을 한다. 나도 지금까지 그녀와 사귀었다고 할 수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우체부를볼때 생각난다면 그 당시의 시간은 아름다웠다 라고 느끼는 지금..다시 겨울이다.

 

 

 

강형기

 

선진문학작가협회 시인 / 기획국장

SJC문예방송 MC 

건축 . 이동식 가설건축물 설계.디자이너

반려동물관리사

문학심리상담사

인문학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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