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 늪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다: 해결의 미학 (대구와 대조) . 탈식민주의
작성일 : 2024-12-16 23:22 수정일 : 2024-12-26 22:13 작성자 : 김영미 (river9317@naver.com)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 늪)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영화분석 -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다: 해결의 미학 (대구와 대조)
주체의 타자화 /비제도권‧생존권‧장애‧공동체의 상실/ 사회적 연대(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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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 – 늪과 코코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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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상어 |
생존/시스템(코코넛) |
약자/생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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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생존 |
제도권/비제도권 |
인권/비인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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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 |
복지/비‧복지 |
자선/사회복지 |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가며 시대를 함께 공존해 가는 공동체적 운명이 결여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제도권 아래 잘 적응하며 아무런 자율적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규칙과 규율 법령을 잘 지켜나가는 사람을 원한다. 일개 개인의 소리는 불만이나 난동 혹은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퇴보된 자 혹은 고립된 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다니엘의 임종은 사회적 희생양이자, 제도권의 문제에 대한 반론을 언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마리앙투아네트’의 과소비는 전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대통령 ‘무가베’ 정부 역시 인플레이션의 심화로 인해 빵 한 개가 수‧ 조 원에 달해 화폐는 폐지되고 화폐가 통용되지 않는 나라로 전락해 국민은 살아갈 수 없게 됐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극빈한 상태로 세계의 구조가 필요한 상황에까지 와 있다.
‘나에게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은 그만큼 생존이 인간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생존권 앞에서 사회적 제도와 규율을 논하기엔 너무나 현실에서 떨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제도권과 지배라는 사회 ‧문화 ‧제도 아래 그것을 준수하며 지키느냐! 아니면 자신의 이익과 불이익에 맞서 도전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느냐에 있다. 주체의 전복(코코넛/늪)이 아닌 주체의 전제를 일컫는 주체의 생존을 향한 외침이다. 내일 당장 끼니가 없어 굶었다며 그 외침은 더 이상 미미한 외침이며 타자의 요구가 욕망에 의한 외침이 될 수 없다. 다니엘의 임종은 분리주의가 아닌 통합에 있다 흑백논리가 아니다. 단순히 참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주체가 붕괴해 가는 것을 암시했다. 가구를 팔고 ‘케이티’에게 공동체의 삶을 영위했다. 주체의 삶 속에서 우리는 회복하며 다시 살아갈 희망을 갖게 된다.
한 사회의 존재로서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살고자 한 것이다.
카메라의 렌즈를 돌려 사각지대를 잡은 것이 아니다. 인간 삶의 사회적 제도와 규율 복지에 항상성을 갖춘 아바타를 부르짖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권이란 미명하 에 그 속에 규제되지 못하고 완화되지 못한 정책을 외치고 부르짖는 약자. 사회적 약자라는 단순한 구도와 원리를 찾으려 한 것은 아니다. 신 자유 경제 시대에 의한 노예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가속화 속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만들고 독자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타자의 주체를 실행해 간다고 볼 수 있다. 반복과 차이, 욕망과 한계를 넘어선 대타자(늪)를 전복하고 우리는 아바타가 아닌 타자가 되어야 한다. 타자의 욕망이 지배한 사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타자는 권력에 순응하기보다 타자의 욕망이 정당화될 사회적 기반을 향한 작은 몸부림이자. 형성되고 붕괴하는 삶의 모습을 담아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전하는지를 알게 하는 삶의 가치를 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