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만상 희로애락 기록 남겨야
작성일 : 2025-01-19 09:02 수정일 : 2025-01-19 12:22 작성자 : [대전= 더뉴스라인] 홍경석 기자 (casj007@naver.com)

#1
한국 영화 택시 운전사(A Taxi Driver)는 2017년에 개봉했다. 1980년 5월,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은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영문도 모른 채 길을 나선다.
광주 그리고 사람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어떻게든 택시비를 받아야 하는 만섭의 기지로 검문을 뚫고 겨우 들어선 광주. 위험하니 서울로 돌아가자는 만섭의 만류에도 피터는 대학생 재식(류준열)과 황 기사(유해진)의 도움 속에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만섭은 집에 혼자 있을 딸 걱정에 점점 초조해지는데… 관객 수 1,218만 명의 빅 히트를 기록한 이 영화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독일 기자와 서울의 택시 운전사 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긴장을 묘사하고 있다.
#2
일제 때 한국 최초의 여성 택시 운전사로 알려진 이정옥(李貞玉)은 오산 보통학교에서 1년간 교편을 잡다가 산파업으로 전환하여 2년 동안 일했다. 그러나 벌이가 적어 흥미를 잃은 그녀는 운전으로 눈길을 돌린다.
운전 기술을 배운 그녀가 핸들을 잡던 시절의 택시 요금은 시간당 4원으로 당시 쌀 한 가마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여자가 택시를 운전한다니까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그 점에 대해서 이정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자 운전수라니까 시험조로 한번 타고자 해서 타는 손님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이왕이면 여자 운전수를 불러라, 히야카시나 좀 하자꾸나! 이런 생각을 하고들 불렀다. 그래서 어떤 때는 채신없는 자식들이라고 욕이나 실컷 해주고 싶었지만 직업의 성질상 꾹 참았다."
'히야카시'는 일본어로 ‘희롱’을 뜻한다. 당시의 택시는 물론 크라이슬러·비크·포드·플리머드 등 모두 외제 차였다. 승객은 주로 부호의 자제들이나 기생들, 그리고 택시를 타는 목적은 드라이브였다.
수입이 많이 오르는 시간은 자정이 넘어서부터였다. 취객들이 이용하기 때문이었다. 취객을 태우고 집을 찾지 못해 몇 시간이고 헤맨 적도 있었다. 이정옥의 당시 택시 한 대당 수입은 한 달 평균 600원 정도였다고 한다. 쌀 150가마 금액이었으니 대단한 액수였다.
요즘 시세로 치자면 쌀 1가마(20kg)를 18만 원으로 환산할 때 대략 2천7백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돈을 모은 이정옥은 집을 담보로 하고 크라이슬러 두 대를 월부로 구입, 택시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는 전세료가 100원이나 하는 백천이나 온양온천으로 장거리 운행을 해 수개월 만에 차 값 6천 원을 모두 갚아버렸다.
그 후 그녀는 '동양택시'를 인수하여 10대의 차량을 운행했는데, 그때에도 현역 운전사였다. 또한 10년간 무사고 기록을 세워 ‘택시의 여왕’이라는 화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3
30년 넘는 우정과 친교를 맺고 있는 동생이 택시 운전을 한다. 공주가 고향인데 나처럼 술과 의리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작년까지는 툭하면 만나 낮술도 마다치 않았는데 올부터는 상황이 급변했다. “형, 앞으로 3년 동안 이를 악물고 택시 운전해서 노후자금 마련한 뒤 과거의 동생으로 복귀하겠습니다.”
여기서의 ‘복귀’는 이전처럼 ‘주님 영접(언제든 술을 반기는)’을 의미한다. 의지까지 참 대단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유성구 상대동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그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맞게 유성 충남대 부근에 있다기에 호출하여 집으로 출발했다. 나는 택시 안에서 강조했다.
“앞으로 3년 동안 택시 운전을 하면서 겪은 승객의 천태만상과 삶의 희로애락 등을 틈틈이 기록으로 남겨라. 형이 책으로 내줄게.” 동생이 이정옥 버금가는 ‘택시의 왕’이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임은 구태여 사족의 덕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