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인

작성일 : 2025-02-02 05:54 수정일 : 2025-02-02 07:52 작성자 : [대전= 더뉴스라인] 홍경석 기자 (casj007@naver.com)

 

[대전=The뉴스라인] 홍경석 기자 = 장희빈(張禧嬪)은 조선 숙종의 빈이자 경종의 어머니였다. 숙원(淑媛)으로 있다가 자신이 낳은 왕자가 원자(元子)로 책봉되자 희빈으로 올랐다.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정비(正妃)가 되었으나, 갑술옥사 후 *‘무고(巫蠱)의 옥(’)에 연루되어 죽었다.

 

1689(숙종 15)부터 1694(숙종 20)까지 왕비로 있었지만 폐비였던 전임 왕비 인현왕후가 삼불거로 복위하게 되면서 중혼법에 따라 다시 후궁으로 강등해 돌아갔다.

 

현대인에겐 '희빈 장씨', '장희빈', 혹은 그녀의 이름이었던 '장옥정(張玉貞)'으로 익숙하다. 장희빈은 곧잘 사악한 여인으로 회자된다.

 

마지막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왕세자를 만나게 해 달라 저항하다 왕세자를 데려다주니 "이 씨 왕실의 대를 끊어버리겠다"며 왕세자의 생식기를 잡아 훼손시켰다는 설이 있다.

 

또한 사극으로도 방영되었듯 그녀의 최후 당시 문짝에 몸이 눌려진 채 숟가락으로 강제로 벌려진 입 사이로 쏟아진 여러 동이의 사약으로 결국 피를 쏟아내며 죽었다는 야사까지 전해진다.

 

인현왕후전에 따르면 장희빈은 사약 여러 사발을 강제로 마시고 죽은 직후 천벌을 받았는지 원래라면 천천히 썩어야 정상일 시체가 순식간에 썩어 특유의 시체 썩는 냄새가 온 궁궐에 진동을 했다고 한다.

 

이에 궁궐의 모든 사람이 불쾌감을 표하자 경악한 숙종이 당장 시체를 궁 밖으로 버리라명령하여 희빈의 시체를 즉시 궁 밖으로 내다 버렸다고 한다.

 

생전의 아름답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썩었다가, 다음 날 뒤늦게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가보니 이미 시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검은 피로만 가득했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 인생은 생로병사이며 권력은 화무십일홍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주말마다 전국이 더욱 요란스럽다. 정치권의 공방 역시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인이 눈에 띈다. 굳이 누구라고 지적하지 않아도 다 알만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사악한 사람이다. 사악(邪惡)은 간사하고 악함을 의미한다.

 

자신이 어제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오늘 바꾸고, “존경한다고 하니 진짜인 줄 알더라는 그 유명한 어록까지 만들 정도로 궤변의 달인인 사람이다. 반면 시정의 장삼이사들은 평소에도 사무사(思無邪,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프랑스 속담에 여자는 교회에서 성녀, 거리에서는 천사, 집에서는 악마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든 생각. 그렇다면 그는 사회적으로는 성자, 정치에서는 강자, 실제로는 악마가 아니겠느냐는.

 

지지율 ‘30% 박스권에 갇혀 있는 이유가 훤히 보인다.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무고의 옥 : 1701(숙종 27) 희빈(禧嬪) 장씨(張氏)로 인하여 일어난 옥사.

1689년 왕비 민 씨(閔氏)가 폐위되고 장 씨가 왕비가 되었으나, 1694년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장 씨는 다시 희빈으로 내려갔다.

 

이때 희빈의 오빠 장희재(張希載)가 희빈에게 보냈던 편지가 발각되었는데, 그 속에 폐비 민 씨를 모해하려는 문구가 있어서 희재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소론인 남구만(南九萬)이 그가 세자의 친척임을 이유로 적극 변호하여 무사하였다.

 

당시 정국은 장 씨 소생인 세자에 대한 지지 여부를 쟁점으로 노·소론이 대립하였는데, 소론은 세자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세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인현왕후가 죽은 뒤 희빈이 취선당(就善堂) 서쪽에 신당(神堂)을 설치하여 인현왕후를 저주하고, 자신이 중궁으로 복위하기를 기도한 사실이 발각됨으로써 무고의 옥이 일어났다.

 

이때도 소론은 세자를 위하여 희빈을 용서할 것을 청하였으나, 결국 왕은 희빈을 자진하도록 하고 희재와 장씨 일파를 국문하여 죽였으며, 남구만·유상운·최석정 등 소론 대신들을 귀양 또는 파면시켰다. 이 사건으로 소론 세력은 약화되는 반면, 노론이 조정에 크게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