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조각 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교훈
작성일 : 2025-03-03 09:13 수정일 : 2025-03-03 09:34 작성자 : [대전= 더뉴스라인] 홍경석 기자 (casj007@naver.com)

#1.
영화 [비열한 거리]는 2006년에 발표한 누아르(noir) 수작이다. 삼류 조폭 조직의 2인자인 병두(조인성 분)는 조직의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제대로 된 기회 한번 잡지 못하는 주먹잡이다.
그는 조직 내에서도 하는 일이라곤 떼인 돈 받아주기 정도인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다.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쓰러져가는 철거촌 집 한 채뿐이다.
삶의 무게는 스물아홉 병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어렵사리 따낸 오락실 경영권마저 보스를 대신에 감방에 들어가는 후배에게 뺏긴 병두는 다시 한번 절망에 빠지지만, 그런 그에게도 기회가 온다.
조직의 뒤를 봐주는 황 회장(천호진 분)이 은밀한 제안을 해온 것이다. 황 회장은 미래를 보장할 테니 자신을 괴롭히는 부장검사를 처리해달라(살해)는 부탁을 한다. 병두는 고심 끝에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황 회장의 손을 잡음으로써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된 병두는 영화감독이 되어 자신을 찾아온 동창 민호(남궁민 분)와의 우정도, 첫사랑 현주와의 사랑도 키워나가며 이제야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던 어느 날, 병두는 동창 민호에게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게 되는데… 민호야, 너는 내 편 맞지? 이상은 이 영화의 시놉시스다.

#2.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원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먼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한반도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일본의 패망 후 한반도는 해방되었지만, 분단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각각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점령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나뉘어 각각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남한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북한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이로 인해 두 지역 간의 이념적 대립이 심화되었다. 남북한은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면서 서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1948년 남한에서는 대한민국이,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면서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은 1953년 정전협정으로 끝났지만, 공식적인 평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아 지금껏 분단 상태가 고착화되고 있다.

#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설전을 주고받으며 국제 뉴스와 함께 센세이션(sensation)을 일으켰다.
이 모습을 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그의 부하들은 일제히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하며 우크라이나를 향한 압박에 나섰다.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트럼프는 현재의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을 강권한 반면,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침공한 자국 영토를 반환해야만 비로소 종전 협정이 가능하다고 맞서면서 미-우 정상회담은 결국 파국의 결과를 초래했다.
젤렌스키는 미국을 떠나면서 ‘우크라이나는 왜 핵무기를 포기했나?“를 읊조리며 통탄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연방 시절에는 엄청나게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당시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는 약 1,800기의 핵탄두, 176기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그리고 25기의 전략 폭격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세계에서 세 번째 핵무기 보유량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해 있었으며, 핵무기 유지보다 경제 재건이 더 시급한 상황이었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 러시아, 영국으로부터 자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보장받았다.
이것이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이다. 이 양해각서에 따라 서명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과 침략 시 국제적 지원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양해각서를 무시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과 영국 등은 지원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종잇조각이 된 것이었다.
미-우의 정상회담 결렬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을 러시아는 물론 북한과 중국의 정상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들 세 국가는 모두 핵무기 보유국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눈만 뜨면 사생결단으로 대치하는 여야의 정쟁, 국익보다 노조 눈치를 먼저 보는 사시(斜視)를 지닌 정당, 편향된 재판관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헌재, 마치 가업을 잇는 듯 보이는 인사 복마전 선관위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변한 건 바로 ‘힘없으면 맞는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