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 일원을 가다

작성일 : 2025-04-24 20:56 수정일 : 2025-04-24 21:04 작성자 : 김용복 기자 (kyb1105@hanmail.net)

덕천 염재균 / 수필가 ,시인

 

4월의 봄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이상고온 현상으로 아침. 저녁과 한낮의 기온차가 너무 심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노년기에 접어든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잃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도 현장체험 학습을 떠나는 셋째 주 수요일(23일)은 전날의 비로 인해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비가 그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여행을 떠나는 오늘은 약간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아침의 날씨를 보이고 있다.강의실을 벗어나 대전시민대학을 다니는 3개반(고사성어, 불교학, 동양철학)이 합동으로 역사적 유적지인 강진과 해남으로 떠나기로 했다.  현장체험을 하든,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힘은 들어도 즐겁다고 생각된다.  간단한 옷차림을 하고 출발지인 구)충남도청 정문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을 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직장에서 퇴직을 한 분들이 대부분이라 약속시간에 와 주었다. 승차 인원은 교수님들을 포함하여 42명으로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있다.

 

우리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는 호남고속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농촌의 들녘과 산들은 허허벌판이었는데, 지금은 초록으로 물들어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자연의 변화는 우리네 인간들은 따라갈 수 없고 흉내 낼 수도 없다고 본다. 현장학습을 주관하시는 알기 쉬운 동약철학반의 황의동 교수께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인 강진의 다산초당과 백련사, 그리고 해남 윤씨의 가문과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가 있는 녹우당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불교학을 강의하시는 김방룡 교수로부터 백련사의 혜장선사인 아암 스님과 유배를 온 다산 정약용과의 교우관계로 인한 힘든 18년간의 유배생활을 견디어 냈다는 말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고사성어를 강의하는 장상현 교수는 수주대토(守株待兔)에 대한 유래와 요즘 세대의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이 복권방에 몰리는 현상을 말씀하셨다.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청자의 고장이기도 한 강진읍에 3시간 이상 걸려 도착하니 홍보를 위한 청자 모형이 산의 한 비탈면을 수놓고 있었다. 자연을 이용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생각된다.여행의 재미는 먹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때가 되면 먹어야 힘이 나고 우의도 돈독해진다고 한다. 한식뷔페를 한다는 골목길에 있는 ‘강진식당’으로 찾아갔다.

 

 4명씩 자리를 잡은 후 본인들이 먹을 만큼 음식을 가져다 먹으며 여행의 의미를 다져보는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 후 가로수가 동백나무로 된 백련사부터 들렀다. 여수의 오동도는 동백꽃이 지고 없지만, 이곳은 아직도 동백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만덕산 백련사 간판이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 일행들을 반기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백련사가 어울려 한편의 오케스트라의 연주곡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수백 년이 넘은 고목들과 자태가 아름다운 배롱나무, 그리고 오래된 동백 숲은 힐링의 장소요 스님들이 참선하는 장소로 으뜸이라고 생각된다. 사방이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백련사였다. 절 옆에는 다산이 즐겨마셨기에 '다산'이라 불리게 한 차밭이 생기를 잃어버린 것처럼 찻잎이 보이질 않아 필자의 가슴을 실망하게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이곳 차밭에도 그 영향을 가져다주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동백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일명 사색의 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의 아암 스님과 차를 마시며 교우관계를 위해 걷던 곳이라 하니 필자도 그 당시의 심정으로 발걸음을 해본다. 오르막과 내리막길로 이어진 숲길은 조금은 힘들었어도 자연과 하나 되는 듯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한 건물이 보였다. 다산이 책을 저술했다고 하는 ‘동암’이었다. '송풍루'로 불리기도 했는데, 손님들을 맞이한 곳으로 다산 정약용이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몇 걸음 옮기니 다산초당(茶山草堂)이다. 집 옆으로 작은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유배지의 생활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으려고 만들어 감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산초당 마루에 앉아 사진도 찍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초당 안에는 누가 써 놓았는지 ‘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타관가구 목민지관 불가구야 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간 머문 곳이다. 요즘 말로 잘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신세였다고 한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져 양반이었던 정약용으로는 울분이 쌓였을 것이고, 신세 한탄의 계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련사의 스님과 교유관계를 맺으며 다산초당에서 차를 마시며 밤늦도록 학문을 연구했다고 한다. 정약용의 호가 말년에 ‘다산’이라 칭한 것도 차를 너무 좋아하며 힘든 유배지의 생활을 견디어 냈을 것이다.

 

가파른 다산초당으로 이어진 길을 내려오니 마을이 나타났다.  요즘 보기 힘든 돌담길이다. 어느 곳은 허물어지기도하여 보기가 흉하다. 농촌에는 나이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아픔으로 다가온다, 농촌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 산다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박물관으로 가, 다산의 생애와 대표저서, 가족사랑, 다산의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다방면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긴 분인데, 그 당시 금기시 하던 천주교에 관한 활동으로 인해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가족사랑의 대표적인 글인 두 아들에게 하고픈 당부의 말을 적은‘霞帔帖(하피첩)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산의 하피첩은 폐지를 줍는 분이 발견하여 여러 단계를 거쳐 국립중앙박불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다산 박물관 앞에는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는데, 다산에 대한 백일장에서 쓴 글 중 좌우명으로 삼아도 될, 한 고등학생의 글귀를 적어본다.

 

 “책을 읽는 것은 뜻을 구하기 위해서다.  만약 뜻을 얻지 못한다면 날마다 천 권의 책을 독파한다 해도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햇살이 한 줌도 없는 여행하기에는 좋은 날이다.

 

  다음으로 해남에 있는 녹우당과 고산 윤선도 박물관을 찾아갔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녹우당(綠雨堂)’으로 향하는 길은 백작약과 보랏빛의 꽃 잔디가 화사하게 피어 관람객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꽃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녹우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고산 윤선도박물관으로 향했다. 지하1층으로 가 전시실 입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고산의 오우가와 어부사시사, 조선 후기 선비 그림의 선구자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필자는 3종류의 탁본을 떠보는 등 흥미있게 관람하였다.

 

 박물관을 나오니 길옆으로 보리밭과 마늘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리밭에 대한 어릴 적 향수가 그리움으로 다가와 동심으로 돌아가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고 자연과 친구가 되려는 것 같다. 이번 역사적 발자취가 살아 숨 쉬는 강진과 해남의 현장학습은 그 어디 여행보다도 그 의미를 더하는 느낌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시민대학이라는 평생학습의 장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면서 노년의 삶을 되돌아보는 인생여정의 길은 아름답고 즐기는 맛이 있다. 한 푼의 돈을 벌기보다는 나눔을 실천하고 평생 배우는 삶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라며 이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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