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버지는 딸에게 공부를 안 시켰을까?
작성일 : 2025-05-21 20:53 수정일 : 2025-05-22 18:48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나는 66세 중학교 야간반 1학년이다. 이번 주는 시험기간이다. 오늘은 영어와 역사 시험이 있었다. 시간에 맞춰 등교를 서둘렀다. 시내버스를 타고 우송고등학교 앞에서 내렸다.
같은 반의 70대 할머니 급우가 버스에서 하차하면서 인사를 했다. 반가이 여쭈었다. “얼마 전 다치신 다리는 좀 어떠세요?” “병원을 다니는 데도 고령이라 그런지 잘 안 낫네요.”
“그럼 한의원에 가셔서 침을 맞아 보세요.” “고마워요, 반장님.” “그런데 버스에서 같이 내리신 분도 우리 학교 학생이신가요?” 그러자 동행한 할머니께서 웃으셨다.
“네, 그렇습니다. 82세 할머니 고등학생이죠.” “앗, 그렇다면 우리 학교 선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나의 스마일 미소에 그 할머니, 아니 ‘선배님’께서는 마치 18세 소녀처럼 빙그레 웃으셨다. 같이 학교로 가는 야트막한 날망(‘언덕 위’를 뜻하는 충청도 사투리)을 오르면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저도 사정이 있어서 이 나이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무슨 곡절이 있으셨는지 궁금하군요.” 그러자 82세 할머니의 만학관(晚學觀)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 할머니는 형제와 자매도 많았다. 하지만 당시 그의 아버지는 여자가 공부를 배우면 연애편지부터 쓴다며 공부를 못 하게 막았다. 실로 어이가 없는 말에 절망한 그 할머니는 얼마 배우지도 못한 채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반면 오빠와 남동생들은 아버지의 채근에 많이 배웠다고 한다. 책으로 써도 자서전 한 권은 뚝딱 쓸 정도의 그 시절 심경은 오죽했을까 싶어 마음이 저려왔다.
왜 우리의 지난 시절 아버지는 딸에게 공부를 안 시켰을까? 여기엔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배경이 작용했다. 과거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 질서가 강했고, 유교 사상의 영향이 컸다.
남성은 가문을 잇고 사회 활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로 여겨졌고, 여성은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며 가정을 보살피는 역할이 강조되었다. 교육 역시 주로 남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자녀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가정에서는 가문의 대를 잇고 장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아들에게 교육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울러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이 학교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여 전문적인 직업을 갖는 경우가 드물었다. 결혼 후에는 가사나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딸의 교육이 장래의 삶에 필수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인식도 있었다.
딸에게는 공부보다는 바느질, 요리 등 살림과 관련된 기술이나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사회 인식까지 달라졌다.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자녀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윽고 학교 후문이 보였다.
“공부하기 힘드시죠?” 나의 질문에 그러나 뜻밖의 대답이 나를 새삼 깨우치게 했다. “너무 늦은 공부이긴 하지만 하루하루 배운다는 게 참 행복해요!”
나는 명함을 드리면서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82세 할머니의 만학관(晚學觀)을 거듭 칭찬하며 교실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