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면학 꿈은 사치였지만
작성일 : 2025-05-25 12:06 수정일 : 2025-05-25 13:57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사랑하는 나의 딸아, 그동안 안녕? 며칠 전 네가 이사한 서울 마포의 아파트를 구경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귀여운 내 손녀가 또 눈에 삼삼하구나.
너를 더욱 닮은 ‘붕어빵’ 내 손녀는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라며?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너를 네 엄마가 낳던 때가 지난 1987년이니 어느덧 3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그사이 너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과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직장 또한 안정된 곳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여간 고맙고 대견한 게 아니구나. 새삼스럽겠지만 너무도 훌륭하게 잘 자라준 내 딸이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어떤 꽃보다도 곱고 사랑스럽단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딸도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너와 사위를 닮아서 분명 똑똑한 학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빠는 요 근래 며칠간 학교에서 신중한 선택과 긴장을 요구하는 기말고사를 보았단다.
그 험지(?)를 넘으니 비로소 완만한 평지와 휴식의 시간이 보너스로 찾아왔지 뭐니. 어제 5월 24일 토요일 오전에 우리 학교 급우들과 함께 계룡산 수통골로 소풍을 떠난 것은, 그런 차원의 위로 겸 피로 해소의 행동이었단다.
어린아이든 우리 같은 ‘어르신’ 역시 소풍은 즐겁더구나. 수통골 주차장 앞에서 만난 우리 1학년 3반 급우들은 계룡산의 끄트머리 수통골을 향해 올랐다.
주변의 맑은 물과 푸르른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수통골은 역시나 변함없이 곱고 청아(淸雅)했다. 급우들의 대부분은 계룡산의 더 높은 곳까지 올랐으나 나는 소류지(沼溜地)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계룡산 국립공원 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지. 계룡산의 푸른 삼림에서 출발한 맑은 물은 시원스럽게 흐르며 소풍의 백미(白眉)에 즐거움을 추가해 주었다. 계룡산 국립공원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급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어.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보물찾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나는 삼색 볼펜과 또 다른 선물까지 받는 즐거움을 누렸다. 다음으로는 소풍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점심시간!
예약한 오리 누룽지 백숙 전문 식당에 들어가 급우들과 함께 맛있는 고급 오리 요리를 먹노라니 포만과 행복감이 더욱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푸짐한 식사와 안주에 술이 빠지면 실정법 위반인지라 동석한 급우들과 술까지 나누노라니 문득 계룡산 수통골은 마음의 벽까지 허무는 ‘소통 길’이라는 생각에 흡족했단다.
음식과 술을 나누면서 나는 반장의 위치였으되 나보다 연상인 부반장에게는 “형님”으로, 연하인 급우에게는 “아우님”으로 호칭하면서 화기애애(和氣靄靄)의 성(城)을 굳건히 쌓았지 뭐니.
그래서였을 거야, 수통골의 맑은 계곡물이 더욱 시원스러운 박수로 우리들의 결속(結束)을 크게 축하해 주었던 것은.
얼마 전 상경하여 너의 집에서도 내가 말했듯 아빠는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단다. 그건 바로 만학(晩學)이 주는 보람 때문이야.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53년 만에 비로소 맞이하게 된 중학교 입학은 비록 야간 수업이라는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배운다는 수확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더구나!
너는 어렴풋이 알겠지만 아빠는 정말이지 형극(荊棘)과 같은 지난 세월을 살아왔단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 잃은 어머니와 깊은 병이 들어 가장의 중책을 감당하지 못한 홀아버지로 인해 나는 중학교조차 진학할 수 없었다.
그렇게나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의 내게 있어 면학의 꿈은 고작 사치였단다. 배움의 끈이 짧다 보니 얼추 일생 전체를 비정규직, 세일즈맨, 계약직, 공공근로 등 한직으로만 맴도는 방랑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랬기에 너와 네 오빠의 교육에 있어서는 그 어떤 부모보다 열심히 매진했노라 자부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올해 입학한 대전시립중학교에서 1학년 3반 반장을 맡고 있단다. 급우들의 연령이 60.70대의 고령이다 보니 건강 문제로 결석하는 경우도 잦단다.
이런 때도 반장인 나는 급우들과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가교 역할에 있어서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되어 사실은 피곤하기도 한 게 사실이란다. 그렇지만 무려 53년 만에 새로이 시작하게 된 공부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움까지 가세하는 덕분에 이제야 비로소 나도 사람다운 삶을 사는구나 싶어 대견스럽기도 하단다.
내 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에 아빠는 중학교 과정을 모두 배우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게 될 거야. 영특한 내 손녀에게 뒤지기 싫어서라도 아빠는 더욱 분발하여 열심히 공부할게!
사랑한다, 내 딸아! 내 딸로 와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