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인디언 기우제’를 믿으면서

작성일 : 2025-06-04 05:20 수정일 : 2025-06-04 07:13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의 대표작인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마드리드 북쪽에 자리잡은 카스티야 지방의 작은 도시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몰락한 이달고 집안을 뿌리로 둔 이발사 겸 외과 의사인 로드리고 세르반테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로드리고는 어린 시절부터 청각에 문제가 있었던 데다,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가족들이 스페인 여러 곳을 떠돌았다. 빚 때문에 옥살이도 했다.

 

세르반테스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 비참함과 부끄러움으로 얼룩졌다. 세르반테스의 학력은 불분명하나 대학은 밟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분이 나와 닮았다.

 

세르반테스는 군 생활을 하다가 15759월에 막시밀리안 2세 황제가 써준 표창장을 받고 제대하면서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오던 길에 악명 높은 알제 해적들에게 형 로드리고와 함께 포로로 잡혀 5년 동안 알제리에서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노예 신분으로 5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가족이 모은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풀려났다. 그때가 33세였다.

 

세르반테스는 풀려난 뒤 군사 식량을 납입하는 식량 조달원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을 떠돌아다니는 직책을 맡았으나, 그런 중에도 교회 소유 밀을 징발했다고 파문당하고, 당국 허락 없이 밀을 팔았다는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풀려난 뒤로 그라나다에서 세금 징수원을 했는데, 책임자의 먹튀와 기타 억울한 과정으로 인해 다시 세비야 감옥에 7개월 동안 갇힌다. 그 동안에 그는 작품 돈키호테를 구상했다.

 

그리고 풀려난 뒤 바야돌리드에 가정을 꾸렸고 거기에서 돈키호테 1권을 탈고하며 1605년 돈키호테 1권을 출판한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이 되었고 문학사를 대표하는 걸작의 반열에 오른다. 이때의 그의 나이가 58세였다. 대기만성을 이룬 것이다.

 

돈키호테는 당대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1614년에는 다른 작가가 무단으로 돈키호테 속편을 출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광경을 본 세르반테스는 1615년 정식 돈키호테 속편을 냈다.

 

그 뒤 마드리드로 거주지를 옮기고 1616422일 당뇨병과 간경변으로 한 편의 영화 같은 생을 마감한다. 향년 68세였다.

 

내가 지난 2015년에 처음으로 출간한 저서 [경비원 홍키호테]는 그 제목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했다. 소설 속 돈키호테는 멍청하다. 나를 닮았다.

 

평소 돈은 벌 줄 모르고 마냥 사람과 술만 좋아한다. 돈키호테는 궁극적으로 동정심이 많고 때로는 비극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이 부분 또한 마치 나를 투사(透射)하는 듯싶다.

 

나는 취재의 90%가 봉사의 영역이다. 그래서 늘 쪼들린다. 하지만 당당하다. 나는 최근 공저 포함 51번째 책을 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는 어림도 없겠지만 아무튼 베스트셀러를 갈망하며 나는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글을 쓴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 기우제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