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왜 칼국수 도시가 되었을까?
작성일 : 2025-06-07 11:26 수정일 : 2025-06-07 14:4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칼국수의 도시’인 대전으로 이사를 한 것은 40여 년 전이다. 고향인 천안을 떠나 대전에 안주한 까닭은 직장에서 사업소장으로 승진한 덕분이었다.
당시 직장은 현 NC 백화점의 전신인 대전시 중구 선화동의 동양백화점 빌딩 9층에 있었다. 지금과는 사뭇 달리 당시 선화동은 지척의 은행동과 함께 ‘대전의 강남’이라 불릴 만큼 모든 업종이 성업이었고 불야성까지 동시에 이룰 정도였다.
아무튼 직장에 출근하자 당일 저녁에 대전지사 직원들이 대전의 명물이라며 근처의 선화동 먹자골목에 위치한 광천식당(지금도 성업 중. 주말에는 손님이 줄을 선다)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리곤 두부두루치기와 칼국수(소주는 당연히!)를 냈다. 이후로 칼국수 마니아가 된 나는 지금도 ‘대전 칼국수’를 광적으로 즐긴다.
오늘 자 조선일보에 [‘밀가루 혁명’의 도시 대전 칼국수 왕중왕은?]이 실려 눈길을 포박했다. 여전히 칼국수를 즐기는 미식가답게 당연히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이에 따르면 둔산동의 ‘대선칼국수’가 영예의 1등 자리에 올랐다. 그 밖에도 많은 칼국수 식당이 등장하는데 사견이지만 순위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대전의 칼국수는 다들 그렇게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맛과 명성까지 자자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위용(威容)이라는 주장이다. 대전은 해마다 ‘대전 칼국수 축제’를 연다. 전국 유일의 축제다.

‘1등 신문’도 인정한 대전 칼국수의 위용은 기사에도 나오지만 대전이 칼국수로 유명해진 이유는 6.25 한국전쟁과 관련이 깊다.
전쟁 당시 미국에서 밀가루가 구호품으로 많이 보급되었는데,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밀가루 유통의 거점이 되었다.
또한, 전쟁을 피해 대전으로 모여든 피난민들이 각자 고향의 방식으로 칼국수를 만들어 먹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칼국수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1960~70년대에는 대규모 간척사업 등 국가 산업에 동원된 근로자들에게 노임 대신 밀가루를 지급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교통도시 대전 지역에 밀가루가 풍부해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칼국수가 저렴하고 푸짐한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 유통의 중심지가 되고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다양한 칼국수 문화가 발전한 것이 대전이 '칼국수 도시'로 불리게 된 주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오래 전 사위가 사윗감 자격으로 딸과 함께 나를 찾아왔을 때, 지금은 사라진 대흥동 ‘칼국수 거리’에서 두부부루치기와 얼큰이 칼국수, 족발로 술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칼국수가 또 ‘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