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식=좋은술, 좋은 벗과 함께하는 술문화 그것이 바로 진짜 인생

작성일 : 2025-06-28 00:47 수정일 : 2025-06-28 15:31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필자 강덕영 (전) 신라호텔 관리부장과 잉꼬부부 아내
 

5성급 신라호텔 프렌치 부지배인 강덕영의 주유이야기

 

여기서 ‘주유기’란 주유소 주유기계가 아니라, 제 술자리 인생 이야기입니다. 술에 얽힌 제 추억 여행이라 할 수 있죠. 다만 교회분들은 오해없이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술 친구가 참 많은 편입니다. 학교 동창, 직장 동료, 동네 친구, 사회생활에서 만난 지인들, 특히 신라와 리베라호텔 친구들,두루두루 술잔을 나누었습니다. 이름난 사람은 없어도, 하나같이 정 많고 소탈한 소시민들이지요. 저 역시 술을 좋아했지만, 제 주변엔 "한 잔만"으로 끝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늘 2차, 3차를 외치는 진짜 '애주가'들만 가득했지요."술력은 체력이고 체력은 국력이다"를 외치며 허구한날 술자리가 이어 졌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라는 아내와 함께 촬칵술자리엔 나름의 원칙도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언제나 유쾌해야 하고, 안주는 넉넉해야 하며, 술잔이 비면 망설이지 말고 채워주는 게 예의였죠. 젊은 시절엔 주사가 심해서 길바닥에 드러누운 적도 있고, 시멘트 도로에서 땅이 올라와 엎어져서 얼굴에 생채기를 입은 일도 있습니다. 청와대 출장 며칠 전날 과음을 하여 얼굴을 다쳤는데, 당시 여사원의 화운데이션으로 상처를 가리고 대통령 국빈파티를 서빙했던 해프닝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영빈관 시절(신라호텔 오픈전 5년간)은 거의 매일 술자리가 있었는데 통금이 있더때라, 을지로6가에서 11시 반 전에 천호동 가는 택시를 잡아야 했지만, 택시를 못타면 을지로 3가 단골집으로 몇이서 으레 2차를 갔습니다.대개 외상술로 새벽까지 마시고 여관에서 눈을 붙인 후, 바로 출근한 날도 많았지요. 산악회 갔다 돌아 올때는 막걸리 한 말에 빈대떡, 도토리묵을 싸 와서 버스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웠던 추억도 선명합니다.

 

신라호텔에 근무할 땐 장충동 족발과 빈대떡이 늘 퇴근길에 술꾼들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족발을 식혀서 꼬들꼬들하게 먹는 걸 좋아했지만, 이북 어른들은 갓 삶은 돼지 앞다리살을 최고로 쳤죠. 장충동 족발의 체인화 사업은 대전의 한 업체가 상표 등록을 먼저 해 전국 체인권을 가졌습니다. 

 

제가 기르던 스피츠 ‘에미’가 강아지 네마리를 낳아서 모두 길렀는데, 족발 먹다 남은 걸 한보따리 싸 갖고가 강아지들 주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아깝다며 이웃 아주머니들과 나눠 드셨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엔 대짜 족발을 사서 귀가했습니다. 술을 못마시는 동료들을 부추겨 술친구로 만들고, 꺼덕하면 몇이서 폭탄주를 자주 만들어 마시기도 했는데 그것은 맥주반잔에 소주 한잔이나 양주를 넣은 섭마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지금의 소맥 시초였습니다

 

신라호텔 오픈 전에 일본 오쿠라호텔에서 4개월 1차 연수를 받았는데, 연수 마지막 즈음 일본 친구들이 신주쿠 술집을 보여주겠다며 데려갔습니다. 어떤 술집에선 ‘미아리 큰언니’ 같은 여자들이 등장해 묘기를 보여주어 새삼 놀라기도 했고요. 또 한 친구가 고등어회를 잘하는 집에 데려가 줬는데, 처음엔 비린내가 심해 속이 뒤집힐 뻔했지만 체면상 맛있는 척하고 먹었더니 “오~ 강상, 사바스시 잘 먹네” 하며 포장까지 해주더군요. 기숙사 동료들에게 나눠줬지만 다들 비린내에 못 이겨 모두 버리고 말았죠. 그런데 지금은 회 중에 고등어회를 제일 좋아합니다. 인생, 참 알 수 없습니다.

 

신라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부지배인 시절엔 고급 와인을 맛보기 어려워 손님이 마시고 조금 남긴 와인을 두었다가, 영업이 끝나면 직원들과 입술과 혀로 맛보며 품질과 색과 향을 익혔습니다. 고급와인 품질을 익히는 공부이자 기회였지요. 1983년 이전엔 양주 수입이 자유화되지 않아, 미군부대나 남대문시장에서 대개 주최자가 사온 양주로 파티를 했고, 그 덕에 다양한 브랜드와 칵테일 맛을 익혔습니다. 

 

안양골프장을 비롯한 여러 식당 지배인을 거쳐 메인바와 로비라운지, 나이트크럽, 한,중,일,양식당을 담당하는 과장, 연회과장을 거쳐 리베라호텔 부장으로 일하며 호텔 객실, 식당, 조리, 연회, 판촉, 사우나와 헬스크럽을 전문으로 익히게 되었습니다.

 

86아시안게임 이후는 리베라호텔로 옮겨 88올림픽을 치뤘는데, 프랑스 올림픽팀 본부호텔이 되어 매일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뷔페를 차려야 했습니다. 프랑스 선수와 임원들은 음식은 별로 먹지는 않고, 와인잔을 들고 서서 2~3시간씩 이야기만 하더군요. 직원들은 잠이 모자랐지만, 대회가 끝난 후 남은 와인과 치즈를 우리에게 주고 갔습니다. 

 

그 고급와인을 막걸리 마시듯 퍼마시고, 비싼 치즈는 조리부가 쓸 줄 몰라 폐기처분해 참 아깝기도 했죠. 반면, 중국요리 페스티벌에 왔던 상하이 진지앙호텔의 요리사들은 식자재를 1톤 넘게 가져와 요리하고, 남은 재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갔습니다. 2000년 이후에는 여러나라의 와인 수입이 다변화 되고 지금은 와인 대중화로 남여노소 와인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유성 리베라호텔 시절엔 간부들과 함께 계룡산 야간 산악 훌련을 했습니다. 저녁 7시쯤 동학사를 출발해 금잔디 고개 넘어 갑사로 내려오면, 시원한 동동주와 빈대떡이 기다리고 있었죠. 구호를 한껏 외치고 노래하며 단합했던 그 밤들, 지금도 그립습니다.

 

경성스포츠에서 사장으로 일할 땐 개관과 영업으로 정신이 없어 술자리를 자주 갖지 못했지만 볼링과 헬스,실내골프를 많이 했습니다. 배나무집 오픈 때 꿩장 공사 마치고 직원들과 막걸리 딱 한잔 하고 귀가하던 중 유성 톨게이트에서 음주단속에 걸렸습니다. 벌금과 1년 운전정지를 받았는데, 아직도 그 측정기가 제대로 된 건지 고장이 난건지 의심스럽습니다.

 

30년 전 동창친구 몇이 대전 집들이에 왔을 때, 한친구가 보관 중이던 양주 중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묻길래 레미마틴 XO(코냑)라고 했더니 그친구가 술을 꺼내 바로 따서 한 잔씩 돌렸습니다. 비싸고 의미 있는 술이라 아깝고 화가 좀 났지만, 막역한 친구들 자리라 뭐라 할수 없었지요. 

 

몇년후, 유성리베라호텔 총지배인으로 부임한 처남과 주 2회 정도 술자리를 함께 하며 장어구이, 생선회, 훈제오리등 좋은 안주와 함께 소맥을 즐기고 식당 노래방 기기로 노래를 부르고 술을 참 많이 마셨습니다. 지금도 처남은 그 시절을 가장 맛있는 술자리라고 기억합니다.제가 좋아하는 양주는 진토닉이고 국산주는 소맥입니다.두가지 다 청량감과 상쾌한 맛이 제일이지요.

 

가장 흐뭇한 모임은 신라호텔 ‘샹구회’ 모임입니다.샹그리라뷔페 출신으로 신라, 리베라, 힐튼호텔, 6.3빌딩에서 마감했지만, 45년 꾸준히 모이는 모임인데 9명 중 4명이 고교 졸업 후 호텔에 입사해 근무하면서 10~15년 공부해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교수를 했으며, 애들이 어렸을때는 9가족이 한달에 한번씩 모였던 친형제 같은 존재들이죠.회비를 모아 자녀들 중학교,고등학교, 대학교 입학금과 결혼 비용을 지원해 주었고, 술자리는 언제나 뿌듯하며 화기애애 하고 즐거웠습니다.

 

제가 교회 권사이다 보니 술 마시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기독교는 음주를 거의 금하지만, 천주교는 그렇지 않죠. 성경에도 포도주 예기는 간혹 나옵니다만 교회의 금주는 미국 금주령 시절(1919~1933년) 입국했던 선교사들 영향이고, 성당은 금주시대 이전 수도사들이 먼저 와서 술에 관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독교 성도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고 천주교 신부님들과 성도들 중엔 술을 즐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5년 전, 운영하던 식당을 전세 놓으며 금주를 결심했습니다. 5형제 모두에게 건강 문제가 있고, 가족력을 고려한 결단이었습니다. 어떤 술 친구는 “벼락 맞을 짓”이라며 핀잔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술을 많이 마시게 될까봐 아예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오래동안 갖고 있던 고급 양주와 중국술, 와인은 친구들에게 나눠주었고, 지금은 술 없이도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즐겁습니다.오래동안 술 좋아하던 탕자가 제자리로 돌아 와서 건강한 노후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적당한 술은 보약이 되지만, 과하면 독이 됩니다. 그러나 그 술 한잔 속엔 추억이 있고, 우정이 있으며, 인생살이가 녹아 있습니다. 좋은 음식, 좋은술, 좋은 벗과 함께하는 술문화 인생, 그것이 바로 진짜 멋있는 '술맛', '술자리', '사는맛'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