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 살인죄,대통령이 할 말인가

작성일 : 2025-07-31 21:54 수정일 : 2025-08-01 11:03 작성자 : 정규영 기자 (Rebook@hanmail.net)

정규영 논설위원/ 대학교수,공학박사/시인 수필가 평론가

 

“미필적 고의 살인죄”, 대통령이 할 말인가?

 

국가에 대통령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히 국정을 총괄하는 ‘대표자’라는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막중한 책임과 권한이 수반되는 자리다. 국가적 위기나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국민 모두는 대통령의 언행을 주의 깊게 지켜본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국무회의에서 “반복적 산업재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들을 언급하며 재발 방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표현이다. ‘미필적 고의 살인’이라는 극단적 언어는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대통령의 책임과는 별개로, 기업 활동 전반을 범죄화하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미필적 고의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위험한 행동을 감행한 경우”를 의미한다. 그런데 어느 기업, 어느 경영자가 일터에서 노동자를 일부러 죽게 하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인식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산재 사고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곧바로 ‘고의적 살인’으로 연결짓는 시각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경제 생태계와는 거리가 멀다.

 

산업재해는 물론 줄여야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은 단순히 기업주의 탐욕이나 무관심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근본 원인은 다양하다. 안전을 감독해야 할 행정기관의 책임, 구조적 산업 환경, 비정규직 고용 구조, 과도한 하도급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공무원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방식의 책임 추궁이 결코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로 정책 신호가 된다. 이번 발언 직후, 많은 기업들은 위축됐다. 이미 기업인들은 ‘노란봉투법’, ‘징벌적 손해배상’, ‘배임죄 확대 적용’ 등 각종 규제와 형사처벌 강화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의 ‘살인’ 발언까지 더해지니, 외국인 투자자는 발을 빼고 있고, 국내 기업가들도 “이제 한국에서 사업하는 건 미련한 짓”이라며 좌절하고 있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면 근로자도, 생계도, 삶도 위협받는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자는 취지는 백번 옳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와 혐오 프레임은 산업 현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 마치 벼룩을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산재는 철저한 원인 분석과 현실적인 대책으로 줄여야 한다. 무조건적인 형사처벌 강화나 사업 면허 취소, 주가 폭락 유도 등은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정말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고 싶다면, 규제가 아닌 지원과 예방 시스템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책임’은 모든 주체에게 골고루 있는 것이지, 특정 집단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때 윤석열 정부를 향해 해병대 고 채상병 순직 사건을 놓고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지금은 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 스스로 했던 말을 되새겨야 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 강한 말이 강한 정책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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