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08-04 00:18 수정일 : 2025-08-04 10:59 작성자 : 김상호
또순이와 꺼벙이
– 또순이의 냉장고 심리학
“냉장고 정리”
설마 하며 문을 열어보니,
비닐봉투에 들어간 반찬통이
테트리스처럼 쌓여 있고,
‘유통기한 3년 지난 양념’이
벽 쪽 구석에서 미라처럼 잠들어 있다.
뭐 하나 꺼내려다 손가락 삐끗할 판이다.
“이건 먹는 거야? 버리는 거야?”
조심스레 물어보면
또순이는 정확히 대답한다.
“그건 먹진 않지만, 아직 버릴 것도 아냐.”
그 애매함에 나는 오늘도 혼란에 빠진다.
가만히 보면
냉장고는 또순이의 심리 상태와 같아 보인다.
겉은 정갈해 보여도,
속엔 미련이든 정이든
버리지 못한 것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
심지어
"집에 먹을 게 없다"고 해놓고 시장을 보면서도
냉장고는 열면 터질 듯하다.
마치"당신한텐 정이 식었어" 하면서
내 양말은 여전히 개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언젠가 한 번,
내가 마음 먹고 싹 정리했다.
냉동실 안쪽에서 5년 전 김치가 출토됐고,
‘어디서 받았는지도 모르는 조미김 세트’가 나왔다.
자랑스럽게 “정리했어!” 외쳤더니
또순이가 한숨 쉬며 말했다.
“그건 내 마음속 김치였는데…”
결국 나는 다시 구석에 조용히 박혔다.
냉장고는 단순한 가전이 아니다.
그건 또순이의 역사이고, 감정이고,
때로는 나를 향한 사랑의 깊이다.
지금도 나는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묻는다.
“이건 먹는 거야, 건드리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문을 닫으며 스스로 답한다.
“건드리지 마. 이건 또순이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