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나 준다

그 시절 ‘짭짤한 장사’

작성일 : 2025-08-24 08:52 수정일 : 2025-08-24 09:1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2024년 우리나라 수출액이 6,838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난 1960년에는 불과 3,3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대변혁이 일어난 셈이다. 가난이 점령했던 1960년대에는 비단 수출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도 낙후와 후진을 면치 못했다. 대표적인 게 교육과 근로 분야이다.

 

1960년대에 중학교 진학률은 50% 정도에 머물고 있었으며 중학교에 가지 못한 청소년들은 소위 공돌이공순이라는 곳으로 내몰렸다. 하루 12시간(또는 그 이상)씩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은 먹고살기에도 급급했다.

 

1959년생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중학교 대신 역전으로 나가 밥벌이를 해야 했다. 꼭두새벽부터 신문팔이와 구두닦이에 이어 시외버스 터미널에 정차 중인 버스에 올라 승객들에게 주전부리도 팔았다.

 

그즈음에 간혹 운수 좋은 날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미군의 버스 탑승이었다. 미군에게 다가가서 주워들은 영어 풍월로 기브 미 초콜릿기브 미 시가렛(cigarlet)”을 외쳤다.

 

그러면 부유한처지의 미군의 십중팔구는 초콜릿이나 담배를 나에게 선뜻 주었다. 물론 그건 엄연한 나의 초라하고 부끄러운 구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얻은 초콜릿과 양담배는 주변의 미제를 밝히는 어른과 돈으로 냉큼 바꿔 점심값으로 충당하고도 남는 짭짤한 장사였다.

 

지난 1960년대를 새삼 돌이켜보는 이유는 그 시절에는 나도 십대의 강단(剛斷)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 그 강단을 곧추세우지 못하고 못 배운 설움은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드는 아킬레스건으로 우뚝했다.

 

너무나 늦었지만, 올부터 야간 중학교에 나가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고 있다. 이런 남편을 보고 느낀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얼마 전부터 60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스마트폰 무료 교육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학생 부부가 된 것이다. 아내는 자신과 손주의 사진을 합성하여 올해 달력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까지 터득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새삼 배움의 힘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배운다는 것은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와 성장 기회를 가져다주는 소중한 과정이다. 배움의 힘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며, 세상을 이해하는 깊이까지 더해준다.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도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동력이다. 과거로의 퇴행적인 사고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가 될 수 없다. 배워서 나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