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좀 안 내주시면 안 돼요?”

‘송상현 정신’으로 학교에 간다

작성일 : 2025-09-04 05:45 수정일 : 2025-09-04 07:05 작성자 : 홍경석 보도국장 (casj007@naver.com)

홍경석 보도국장 /작가 시인 평론가

 

평균 연령 70... 과거 같았으면 현직과 현업에서 은퇴 후 손자들을 돌보며 노후의 여유만만한 삶을 살았을 터다. 그러나 우리들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지금도 얼추 반은 일자리에서 돈을 벌고 있다.

 

그러자면 만날 여전히 잠자리에서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근로를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면 난관이 또 기다리고 있다. 그건 바로 등교다.

 

서둘러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대중교통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바지런을 떨어야만 비로소 1교시가 시작되는 오후 5시 전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이윽고 수업 시작.

 

과목별로 다른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신다. 어제는 국어와 수학, 과학, 영어 다음으로는 한문 공부가 줄을 이었다. 영어 선생님께서는 다시금 영어 단어 10개를 열 번씩 써내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숙제 좀 안 내주시면 안 돼요?” 하지만 그건 밖으로는 표출할 수 없는, 입속에서만 맴도는 그야말로 공염불일 따름이었다. 쉬는 시간이었지만 급우들은 일제히 다시금 숙제 작성 모드에 돌입했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영어 시간에 제출하고 선생님의 검인을 받아도 되련만 왜 그처럼 서둘러 숙제부터 해야만 했던 것일까?

 

먼저, 우리 반 급우 중 일부는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면 지역에 따라 자정이 임박해야만 비로소 집에 도착하는 분도 실재한다. 그 시간에 숙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예 학교서 숙제를 마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시금 존경하는 우리 반 급우님들의 공부도 장렬하게정신을 새삼 곱씹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이 부산 동래성에서 조선군과 전투를 치렀다. 당시 왜군을 이끌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굳이 싸우겠다면 할 수 없지만,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달라.”며 항복을 권유했다.

 

그렇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한 동래부사 송상현은 싸우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전사이 가도난)”로 답하며 결사 항전의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고니시는 동래성에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했고 결국 동래성의 함락이 눈앞에 다가오자, 송상현은 조복(朝服)으로 덧입은 뒤 임금을 향해 절을 하고 장렬히 순직했다. 향년 42세였다.

 

뜬금없이(?) 송상현 장수를 거론한 것은 우리 반 급우들의 공부에 대한 장렬한 각오와 실천을 거듭 칭찬하고자 함이다. 오랜 가뭄과 폭염 끝에 단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평소엔 고령과 건강 이상 등으로 인해 서너 명의 결석자가 발생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100% 출석이었다! 이유는 기말고사를 앞둔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따라서 선생님도 깜짝 놀라셨다.

 

6.25 전쟁 전후와 가팔랐던 보릿고개 시절에 태어난 우리 급우님들과 나는 온전한 교육과 학교를 경험하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50여년 만에 야간 중학교 공부를 시작한 나는 그래서 오늘도 자못 장렬한 송상현 정신으로 학교에 간다.

 

이제 겨우(?) 60대 후반인 나와 달리 70대 중반인 누님형님으로 구성된 우리 반 급우님들의 건강과 아울러 다함께 나란히 졸업을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