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실용철학과 한국 정치
작성일 : 2025-09-17 18:12 수정일 : 2025-09-18 08:20 작성자 : 계석일 기자 (kea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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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고무열 박사 / 한남대 교수 |
다산의 실용철학과 한국 정치
조선의 마지막 숨결이 꺼져가던 혼란의 시대, 정약용은 현실을 직시했다. 그는 권력의 향연에 취한 양반 사회도 외면하지 않았으며 백성의 눈물 속에서 실용적인 제도의 해법을 찾으려 애썼다.
약 500 여권을 집필한 그의 붓끝은 공허한 도덕 강론이 아니라, 삶을 살려내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백성을 위한 정치, 삶을 바꾸는 개혁, 탐욕을 제어하는 제도, 그것이 다산 정약용이 그려낸 나라의 얼굴이었다.
2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정치의 풍경은 어쩐지 그의 시대와 너무도 닮아있다. 국회는 민생의 절규를 외면한 채 권력의 진영 싸움으로 가득하다. 국민은 삶의 무게에 허덕이지만, 정치인은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겨눈다. 마치 바람을 가르는 기러기의 날갯짓은 멎었는데, 무리 지어 울부짖는 소리만 요란한 풍경이다.
정약용의 눈으로 오늘을 본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백성은 물이고, 권력은 배다. 물이 떠받치지 않는 배는 반드시 뒤집힌다.”
물을 잊은 배
정약용의 이 간명한 비유는 두 세기를 건너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권력은 국민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국민이 떠받쳐준 덕분에 잠시 항해하는 배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정치인은 마치 배가 물을 지배한다고 착각한다.
선거철이면 ‘국민이 주인’이라는 구호가 나부끼지만, 투표함이 닫히면 정치인은 곧 권력의 성채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들은 공천권과 의석수를 가지고 서로 칼을 겨룬다. 바다는 고요히 출렁이는데, 배 위의 선원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자신의 이익만 계산한다. 민심은 저 멀리서 일렁이지만, 그 물결의 의미를 읽으려는 눈은 보이지 않는다.
정약용의 경고는 분명했다. 물을 무시하는 배는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사사로운 욕망은 국가를 좀먹는다. 다산은 탐관오리의 뿌리를 꿰뚫어 보았다. 권력이 부와 결탁하면, 국가는 곧 병든다. 부패는 한 개인의 타락을 넘어, 제도가 무너져 내리는 신호였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여전히 사사로운 욕망에 잠식돼 있다. 국회의원 특권은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고, 정경유착은 이름만 바꿔 되살아난다. 국민에게는 긴축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만큼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곡식이 메마른 논에서 힘겨운 농부의 손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창고만 가득 채우려는 탐욕스러운 지주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정약용이라면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꾸짖었을 것이다. “사사로운 욕심이 공공을 압도하면, 그 나라는 이미 기울기 시작한 배다.”
협치를 모르는 정쟁의 굿판
정약용은 거중지인(居中之仁)을 강조했다. 가운데 서서 조화를 이루고, 극단을 피하며, 서로 다른 이해를 조율하는 것, 이것이 정치의 본령이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의 국회에서 ‘중도’는 실종된 지 오래다. 협치는 구호일 뿐, 실제로는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바라본다. 합의는 배신, 타협은 굴복이라 낙인찍히는 정치판은 결국 시퍼런 전쟁터로 변한다.
그 풍경은 흡사 굿판과 같다. 각 진영은 북을 두드리며 자기 무리의 기세만 과시하고, 상대를 저주하는 주문을 외운다. 그러나 굿판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부서진 기둥과 허탈한 공허함뿐이다. 민생은 그 자리에서 늘 소외된다. 이를 정약용이 본다면, 오늘의 민주주의는 알곡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적대가 제도화된 정치, 그것은 이름만 민주주의일 뿐이다.
불평등을 외면한 정치의 무능
정약용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제도를 바꾸려 했다. 여전제(閭田制), 지방 행정 개혁 등은 모두 백성의 삶을 바로 세우려는 구체적 실험이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양극화, 교육 격차, 주거 불안으로 휘청거린다. 그러나 정치의 답은 공허하다. TV 앞에서만 ‘민생’을 외치고, 정작 국회 안에서는 이미지 정치와 정쟁이 전부다.
정약용의 가르침대로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지방 분권, 교육·주거 개혁, 복지 모델의 혁신이며 이는 국민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제도다. 백성의 삶을 건드리지 못하는 정치라면, 그것은 이미 죽은 정치다.
죽은 정치 위에 살아 있는 민심
정약용은 말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다.
“국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정치는 죽은 정치다.”
오늘의 정치가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소시민의 삶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민생의 울음을 품지 못할 때, 국민은 다른 물줄기를 찾아 흐른다. 그리고 그 물결은 때로 거센 파도가 되어 배를 뒤집는다.
기울어가는 배 앞에서
다산 정약용 사상은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잠든 고전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정치에 던지는 냉혹한 거울이다. 그는 국민을 주인으로 세우라 했고, 탐욕을 뿌리 뽑으라 했으며, 협치로 나라를 바로 세우라 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정치인은 그 거울을 외면하고 있다.
배는 이미 기울고 있다. 바다는 조용히, 그러나 서서히 파도를 일으킨다. 정약용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들려온다. “백성은 물이다. 물을 버린 배는 반드시 가라앉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무서운 예언의 문턱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