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09-22 10:58 수정일 : 2025-09-22 11:09 작성자 : 김응범 기자 (amen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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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 박사 칼럼니스트/ 한남대학교 교수 |
【고무열 박사의 촌철 칼럼 】
히말라야 설산은 세월의 풍상을 묵묵히 견디며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그 발치에 놓인 네팔의 정치는 깊은 안개에 잠겨 있다.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한 지 10여 년 민주주의의 이름은 달았지만, 그 속은 끝없는 블랙홀 같은 혼돈의 소용돌이다.
정권은 계절풍처럼 바뀌고, 권력은 국가가 아닌 정파를 위해 쓰였다. 민족 갈등, 경제적 취약성, 외세 압력은 그저 권력의 무대 장치였을 뿐이다. 혼돈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치권의 무능과 탐욕만 있었다.
갈등을 풀기는커녕, 갈등을 연료 삼아 권력의 불을 지펴온 자들, 네팔의 오늘은 그래서 불행하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마치 거울을 보듯 지금의 한국 정치 모습이 그대로 데칼코마니다.
갈등을 먹고 사는 정치
정치는 본래 갈등을 해소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은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갈등을 갉아 먹고 산다. 여당은 국정 운영의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국민 통합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반대 진영을 향한 적개심을 동력으로 삼는다. 야당 역시 다르지 않다.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령은 실종된 지 오래고 광장의 함성과 피켓의 구호 속에서 비루한 정치적 생명을 연명한다.
이렇게 권력 게임에만 몰두한 끝에 민생은 무대 뒤편의 어둠 속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에 국민은 점점 냉소적으로 묻는다. “정치는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들만의 생존술인가?”
개혁의 이름으로 포장된 무능
네팔이 공화정 전환이라는 ‘혁명적 제도 개혁’을 했지만, 합의 없는 전환이 혼란만 낳았듯, 한국 정치도 어설프고 이기적인 개혁이 무능을 드러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권력구조 개편, 지방분권 모두 국민 삶과 직결된 중대 과제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그것들은 국민을 위한 논의가 아니라, 정파적 유불리를 따지는 도구로 전락했다.
개혁은 시대적 요구가 아니라 권력 유지의 방패이며, 정치적 폭거의 면죄부가 되었다. 여당은 합의를 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야당 또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반대만 외친다. 결국 남은 것은 국민의 피로감뿐이다.
외세에 기대는 사고의 빈곤
네팔이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스스로 자율성을 잃어버렸듯, 한국 정치도 외세를 국내 정치의 무기로 삼는다. 여당은 미국과 일본을 앞세워 안보의 방패를 내세우고, 야당은 중국과 북한을 거론하며 반대편 깃발을 세운다.
그러나 그 모든 외교 담론 속에서 정작 실종된 것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자주 외교, 실용적 외교다. 정치권은 외세를 불러다 권력을 연장하지만, 국민은 그 대가로 안보 불안을 감내해야 한다. 사실 요즘의 화두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지만, 무능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네팔의 그림자, 한국의 내일?
네팔의 혼란은 먼 나라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곧 맞닥뜨릴지도 모를 미래의 그림자다. 정치가 무능하면 국가는 흔들린다. 갈등을 조정하지 않는 정치는 갈등을 증폭시키고, 제도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정치는 제도를 무너뜨린다. 결국 혼란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쓴 채 민주주의 자체를 삼켜버린다.
지금 한국 정치, 특히 집권 여당은 이 경고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권력의 보존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집권 여당의 책무다. 그러나 오늘의 여당은 정권 유지에만 골몰하며 정적 제거에 집착한다. 야당 역시 무능의 동반자다. 민생은 뒷전이고, 대안 없는 광장정치와 피켓 정치에만 몰두한다.
남은 시간
히말라야는 오늘도 변함없이 우뚝 서 있다. 그러나 정치가 흔들린다면, 그 어떤 장엄한 산맥도 국가를 지탱해 줄 수 없다. 한국 민주주의가 네팔의 혼돈을 닮아가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정치권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정치가 혁신을 거부한다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 역사는 냉정하다. 무능한 정치가를 용서하지 않는다. 국민은 잊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가장 잔혹한 심판자가 된다.
네팔의 어제는 경고이고, 한국의 내일은 선택이다. 한국 정치는 그 선택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