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에 취한 권력, 민주주의는 숙취 중
작성일 : 2025-10-07 01:00 수정일 : 2025-10-07 11:38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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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 박사 |
허니문에 취한 권력, 민주주의는 숙취 중
대한민국은 지금 무소불위 ‘권력의 신혼여행’ 중이다. 언론은 ‘지지율 고공행진’이라며 아부성 샴페인을 연신 터트리고, 민주당은 위선의 셀카를 염치도 없이 마구 찍는다. 그러나 국민은 안다. 그 잔은 샴페인이 아니라 세금이었고, 축배의 음악은 고통의 신음이었다는 것을, 달콤한 허니문 뒤에는 아픈 현실의 숙취가 기다리고 있다.
정권은 권력의 거울 앞에서 도취해 있다. “우리가 잘해서 지지율이 높다”라는 착각이지만, 실은 국민이 강한 인내로 기다려주는 중이다. 하여 그 기다림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권력은 빨리 눈치채야 한다. 실행 가능성 없는 정책만 쏟아지고 국민의 삶은 변하지 않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허니문 데코레이션으로 천천히 부패하고 있다.
■ 권력은 달콤, 야당은 쓴맛
여당이 달콤하게 취해 있다면, 야당은 쓴맛으로 버티고 있다. 정권 초기의 열기에 눌린 야당은 대안을 만들기보다 거리로 나가 피켓을 들었다. 토론 대신 구호, 정책 대신 선동. 국민은 정치 뉴스를 볼 때마다 묻는다. 도대체 “둘 다 왜 저러나?.”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라, 누가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나 겨루는 오디션 무대가 되었다. 대안 없는 광장정치는 마치 불 끄러 나간 소방관이 기름통을 짊어지고 간 꼴이다. “정권 심판”을 외치지만, 정작 대책은 없다. 여당이 독주라면 야당은 아우성만 친다. 이런 정치라면 국민은 심판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 베네수엘라의 교훈 “달콤한 개혁”의 최후
한때 베네수엘라도 그랬다. 차베스 정권 초반, 서민의 영웅이라 불리며 “국민적 허니문”을 즐겼다. 돈을 퍼주고, 비판 언론을 ‘적폐’로 몰았다. 국민은 잠시 환호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 곳간은 바닥났다. 남은 건 포퓰리즘의 폐허와 통제되고 얼어붙은 언론뿐이었다.
야당은 거리에서 피를 토하며 절규했고, 정부는 방송을 장악하고 자화자찬했다. 결국 남미의 석유 부국은 역겨운 기름 냄새만 풍기는 빈곤한 나라가 되었다. 지금 한국의 풍경이 데칼코마니로 겹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 포장된 경제, 텅 빈 지갑
정부는 “경제는 살아 있다”라고 외치지만, 국민은 “통장은 비었다”라고 말한다. 성장률은 숫자놀음이 되었고, 물가 안정은 기획재정부의 희망 사항으로 전락했다. 청년의 월세는 월급을 추월했고, 서민의 대출은 이자 폭탄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국민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린다.
마치 배가 침몰하는데도 “지금 배는 역동적이다”라고 외치는 선장 같다. 경제는 정권의 인형극이 아니다. 단기 부양책은 지지율을 올릴 수는 있어도, 국민의 안정된 행복과 밥상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표를 위한 예산 살포, 생색용 지원금, 이름만 바꾼 재탕 정책들. 정치가 숫자로 민생을 호도하는 사이, 국민은 희망 잃고 떠도는 난파선 신세가 되었다.
■ 사회의 균열, 불평등의 사각 지대
대한민국 사회는 조용히 균열 중이다. 세대 간 불평등, 계층 간 단절, 지역 간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그러나 정권은 “혁신”, “균형발전”이라는 단어로 덮는다. 야당은 그 틈을 이용해 “정권 타도”를 외치며 선동한다. 둘 다 현실을 외면한 쇼의 주인공이다.
국민은 관객이 아니라 피해자다. AI 시대에 필요한 건 첨단 기술 뿐만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인데, 상식이 가장 귀해졌다. 사회안전망은 낡은 정치 프레임 속에 방치되어 연일 사고로 이어지고, 정책은 구호로 변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국가가 아니라 ‘정치 리얼리티 예능’에 가깝다.
■ 숙취의 허니문은 빨리 종료
허니문은 달콤하지만, 숙취는 혹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권력은 ‘정의와 민주주의의 없는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 여당은 자기 최면에 걸려 있고, 야당은 자기 분노에 빠져 있다. 언론은 중립을 가장한 방관자, 국민은 피곤한 청중이 되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권력은 책임으로, 야당은 대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간당대는 지지율은 영원하지 않다. 허니문은 신뢰를 낳지 못하고, 눈속임 마술은 민주주의를 살리지 못한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의 도취와 야당의 무능, 그리고 국민의 무관심이 만나면 민주주의는 바로 그 자리에 쓰러진다.
대한민국의 허니문은 이제 끝이다. 남은 것은 비참한 삶의 청구서뿐. 국민은 오롯이, 숙취의 고통을 겪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