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운동 돌장승』

『용운동 할아버지 할머니 돌장승』

작성일 : 2025-10-08 13:50 수정일 : 2025-10-08 17:11 작성자 : 강형기 기자 (the3do@naver.com)

【대전=더뉴스라인】강형기 기자

 

『용운동 돌장승』

 

장승은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가리키는 신목(神木)이다. 마을의 수문신·수호신, 사찰이나 지역 간의 경계표·이정표 등의 구실을 하며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나무 기둥이나 돌 기둥의 상부에 사람 또는 신장의 얼굴 형태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부에는 천하대장군·지하대장군 등의 글씨를 새기고 거리를 표시한 신앙대상물이다. 보통 남녀 쌍이 마주 서 있다. 장승제는 마을에서 지내는 동제의 일부에 포함되어 진행되는데 잡귀를 물리는 의식으로 매우 떠들썩하고 흥겹게 지내는 특징이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에 '용운동 용방이 돌장승'이 위치하고 있으며, 화강암으로 약400년 정도 되었다. 시내버스로는 619번 노선의 용운동사회복지관역에서 내리면 바로 아래 할아버지 장승을 만나 볼 수 있으며 할머니 장승은 주공2단지 아파트 201동 전면 담장 앞에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있어도 좋아보였을거 같지만 오늘 기자는 따로따로 만나봐야 했다.

 

돌장승은 눈과 코는 튀어 나오게 깍고 입은 일자로 파냈으며, 한쪽은 얼굴윤곽을 둥굴게 표현 하고 얼굴 아래는 장신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장승은 연산군과 광해군 때 경기도 광주지방에서 내려와 이곳에 터를 잡은 임씨 일가들이 세운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조선시대 연산군·광해군 당시 경기도 광주에서 살던 '풍천 임씨'들이 이곳 현재의 용운동으로 낙향해 집성촌을 이뤘다.

임씨들은 이곳에 마을을 이룬 후 그 시대에 유행했던 홍역과 마마 등의 역병을 막기위해 지금의 용방마을 아파트 앞 황대봉산 기슭에 남장신탑을, 고층 주공 아파트 옆에는 여장신탑을 세운 것이다.

탑을 세운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열 나흗날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탑에 제를 지냈고 이러한 탑제 전통은 잠시 잊혀졌다가 지난 1989년 용운동의 모든 어르신들과 풍천 임씨 후손들이 함께 의견을 모아 행사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된 것이다.


마을 수호신으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어 잡신을 막고 재앙을 물리쳤다고 전해오고 있다. 

 

장승에 천하대장군을 새기지 않고 장신을 새기는 것은 광주지방에 많이 보이고 있어 그 흐름을 알 수 있다.매년 정월대보름날 장승제가 진행되면 남장승 주변에 황토흙이 놓이고, 새끼줄에 한지를 주변 소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장승은 짚가방을 뒤로 메고 있다. 여장승은 주변에 황토흙을 놓고, 새끼줄에 한지를 매달아 놓는다.

 

할아버지 돌장승

 

할머니 돌장승

 

 

 

용운동의 역사는 1789년 <호구총수>에 모오리, 초동리, 선암리, 용방리의 이름이 보이며, 1914년부터 용방리와 초동리를 합해 대전군 외남면 용방리가 되었다. 1940년 대전부 용운정으로, 광복 후 대전시 용운동으로 개명되었고, 용운동의 지명 유래는 대전대학교를 가운데 두고 서쪽으로는 용수천, 동쪽으로는 용운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특히 용수골은 옛날 이곳에서 용이 등천했다해서 용수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용방리는 용수 아래에 생겼다해서 용방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모리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 골짜기만은 난리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모리라고 불렀다고 하며, 새울은 약 300년 전 봉곡 송주석이라는 분이 자리를 잡아 봉곡 즉 새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