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의 촌철 칼럼]

믿음은 가정의 등불, 권력의 사다리가 아니다. - 신앙의 본질을 되찾아야 할 때

작성일 : 2025-10-14 03:55 수정일 : 2025-10-15 17:35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고무열 교수(경영학 박사)
 

믿음은 가정의 등불, 권력의 사다리가 아니다.

- 신앙의 본질을 되찾아야 할 때

 

. 종교는 건강한 가정의 뿌리

종교의 본래 목적은 사람을 바르게 세우고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데 있다. 믿음은 신비가 아니라 생활의 질서이며, 기도는 타인을 설득하는 주문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고요한 시간이다. 아침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감사의 말을 나누는 집은 다툼이 줄고, 마음의 평화가 깃든다.

 

참된 신앙은 법전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피어나고,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사랑의 실천이다. 이런 가정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안정되고, 물질적 풍요 또한 정당한 노력의 결과로 따라온다.

 

. 믿음과 풍요, 그 바른 조화

신앙은 가난을 미덕으로 여기지도, 부를 죄악시하지도 않는다. 단지 정직하게 일하고, 바르게 번 돈을 감사히 쓰라는 것이 진리다. 종교가 가르치는 근면, 절제, 나눔, 감사는 인간의 욕망을 길들이는 네 개의 기둥이다. 믿음이 깊은 사람일수록 더 성실히 일하고, 불의한 이익을 거부하며, 이웃의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삶이 결국 진짜 풍요를 낳는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벌었기에 마음이 편안하고 떳떳한 것이다. 신앙의 목적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를 다스릴 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신도에게 올바른 부의 창출을 전하고, 신도는 근검절약의 미덕으로 지족(知足)의 삶을 사는 일이다.

 

. 타락한 목자, 제도적 징계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정직한 신앙의 길을 흐리는 자들로 가득하다. 교회의 헌금을 사유화하고, 성도의 믿음을 장사의 도구로 삼는 타락한 목사와 선교사들이다. 그들은 헌금은 복의 씨앗이라 속삭이며, 신의 이름으로 욕망을 정당화한다. 종교가 장사가 되고, 강단이 연극무대가 될 때, 신앙은 이미 부패의 악취를 풍긴다.

 

이런 타락을 막으려면 종교 내부의 자정 능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종교 지도자의 재정 비리나 도덕적 일탈에 대해선 교단이 아닌 법과 제도로 다스리는 공적 징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신앙의 자유는 방종의 면허가 아니며, 진정한 믿음은 투명함 속에서 빛난다.

 

. 종교를 팔아 권력과 결탁한 자들

요즘 한국 정치의 풍경을 보면 신앙과 권력이 뒤섞인 묘한 향기가 난다. 장관이 기도회를 열고, 정치인은 교회 강단에 올라 마치 예언자라도 된 듯 이 나라는 하나님이 세운 나라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 뒤에는 냉혹한 계산과 표의 냄새가 진동한다.

 

종교의 언어를 빌려 국민의 눈을 가리고, 신의 이름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권력은 결국 신의 대리인코스프레일 뿐이다. 신앙의 순수함을 정치의 도구로 쓴다는 점에서, 이는 신성모독이자 국민 모독이다.

 

더 큰 문제는 종교를 팔아 권력자들과 결탁하는 무리다. 이들은 선거철마다 교회의 문턱을 넘고, 신앙의 언어를 빌려 순수한 유권자의 마음을 흔든다. 목회자와 정치인이 손을 잡고 하나님의 뜻이라 외칠 때, 그 속에는 표 계산과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이런 결탁은 종교를 더럽히고,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권력을 사고파는 자들은 목회자든 정치인이든 모두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종교는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곳이지, 권력을 세탁하는 세탁기가 아니다. 신앙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그 나라는 반드시 타락한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 지도자가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한심하여 한마디 충고는 있을 수 있으나, 신도들을 부추기며 정치적 행사를 일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권력과 종교가 결탁하면 반드시 타락한다. 역사가 증명했다. 중세 교황청의 타락도, 근대의 신정국가도, 모두 신의 이름으로시작해 권력의 이름으로비참하게 종말을 맛보았다. 지금 한국 정치의 일부가 그 길을 걷고 있다. 신앙의 탈을 쓴 정치인은 국민의 비판을 신을 향한 공격으로 돌리고, 언론의 질타를 사탄의 음모로 몰아간다. 이에, 신앙은 방패가 되고 진실은 죄로 변질된다.

 

. 신앙의 본질은 삶 속에 있다.

기도보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하루 세 번의 예배보다 한 번의 진심 어린 행동이 더 크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든 이웃에게 내민 손길,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이것이 진짜 신앙의 얼굴이다. 종교는 제단 위가 아니라 밥상머리의 감사 속에 있고, 믿음은 교리보다 삶의 자세로 드러난다.

 

. 믿음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자

이제 종교는 권력과의 불순한 거래를 끊고, 다시 인간의 본마음으로 돌아와야 한다. 신앙은 권력자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깨우는 빛이다. 타락한 목자도, 종교를 이용하는 정치꾼도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신앙은 가정을 세우고, 나아가 가정은 사회와 국가를 세운다. 그 위에만 진짜 부와 평화가 가능하다. 믿음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축복이 아니라, 바르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스스로 찾아오는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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