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식과 양자 역학이 무슨 관계?
작성일 : 2025-10-25 07:29 수정일 : 2025-10-25 10:04 작성자 : 더 뉴스라인 홍경석 기자 (casj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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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민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인 고가의 고층 아파트. 사진은 관련 기사와 관계 없음 |
[이사 열전]은 사마천(司馬遷)의 위대한 역사서 『사기(史記)』에 실린 인물전 중 하나다. 이사(李斯, 기원전 284년 ~ 기원전 208년)는 중국 전국시대 ~ 진나라의 철학자·정치가이며, 여불위 천거로 진나라 조정에 출사하여 시황제를 섬겼다.
그는 유학자였으나 사상적 기반은 법치주의이며, 도량형의 통일, 분서 등 실시하여, 진시황을 도와 진의 법치주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시황제 사후, 조고(趙高)와 권력 싸움에 패하고서 살해당했다.
이사는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순자(荀子)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진나라로 건너가 승상 여불위(呂不韋)의 발탁을 받아 객경(客卿)이 되면서 정치적 역량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사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봉건제를 반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강력히 주장하여 승상 자리에 오르게 된다. 또한, 사상 통제를 위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진시황에게 외국 출신 인사들을 쫓아내려는 논의에 반대하며 올린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는 그의 뛰어난 논리력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명문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사의 삶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그는 환관 조고의 계략에 휘말려 기원전 208년에 결국 '오체분시'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사 열전]은 한때 진시황을 도와 천하 통일을 이끌었지만, 권력 다툼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한 정치가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사 열전'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넘어 인간의 욕망, 권력의 속성, 그리고 운명의 아이러니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자 실화이다. 새삼 고전의 가르침은 언제나 우리에게 생각할 명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사는 애초 말단 관리였다. 그러다가 진시황과 만나면서 순식간에 팔자를 펴게 된다.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이었는가 하면 그가 어느 날 집에서 잔치를 열자, 소문을 듣고 인사하러 찾아온 문무백관의 마차가 무려 몇천 대를 헤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어떤 권력의 부패 패러다임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다를 바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국회 요직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딸 결혼식을 국회서 치른 것도 모자라 청첩장 내부에 딸의 계좌번호와 함께 카드 결제 가능 링크까지 붙어 있었다(구설에 오르자 삭제했다지만)는 모 정치인의 소위‘수금 작전’은 이런 주장에 당위성의 무게를 더하게 했다.
문제가 더욱 불거지자 “양자 역학을 공부하느라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라고 발언한 부분은 더욱 역겹고 가증스럽기까지 했음은 비단 필자만의 단견이었을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 없는 국민에겐 “돈 벌어 (능력이 될 때) 집 사라”고 닦달하면서 정작 이재명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주도한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3명 중 1명은 집값이 더욱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비싸기로 소문이 파다한 서울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의 수준을 넘어 배신과 분노의 임계점까지 추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