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의 人文 칼럼]

정의는 인간적 얼굴의 철학 - 공리주의의 한계를 넘어, 인간다움의 회복

작성일 : 2025-10-29 16:14 수정일 : 2025-10-30 04:49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정의는 인간적 얼굴의 철학

공리주의의 한계를 넘어, 인간다움의 회복

 

정의란 무엇일까. 사전은 정의를 옳고 그름을 가려 바른길을 세우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의는 단순히 법을 지키는 일이나 벌을 받게 하는 일이 아니다. 정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도리와 양심의 문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가를 묻는 철학이다. 다시 말해 정의는 법전의 조항이 아니라 삶의 온기와 공감의 언어.

 

. 정의를 다시 묻는 이유

 

우리는 종종 정의를 제도나 법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정의는 훨씬 인간적인 질문이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묻는다. 무엇이 옳은가? 이 짧은 물음은 사회의 도덕적 근간을 흔든다.

 

정의는 단지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이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는 먼저 부패하기보다 무감각해진다. 옳고 그름을 구별할 감각이 사라지면, 법이 있어도 정의는 숨을 쉰다. 결국 정의는 문장 속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양심이다.

 

. 공리주의의 유혹과 그림자

 

근대 철학의 주류였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았다.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정의롭다라고 믿었다. 그 말은 한편으로는 매력적이다. 모두가 더 행복해진다면 좋은 사회 아닌가? 하지만 그 안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행복을 숫자로 계산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계산이 가능한 존재로 바뀐다. 소수의 고통은 불가피한 손실로 처리되고, 인간의 존엄은 통계의 뒤편으로 밀린다. 공리주의의 세계에서 정의는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의 문제가 된다. 행복의 총량이 커질수록 정의가 실현된다는 믿음은, 때로 누군가의 눈물을 외면하게 만든다.

 

. 정의는 계산이 아니라 관계

 

정의는 수학의 문제처럼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샌들은 말한다. ‘정의는 단순히 결과의 합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가의 문제다.’라고 공리주의가 인간을 효율의 단위로 본다면, 정의는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본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관계가 존중과 배려 위에 세워질 때 사회는 비로소 정의로워진다. 정의는 누가 더 많이 가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인간으로 대우받는가의 문제다. 서로를 이용하지 않고, 서로를 목적 그 자체로 대할 때 정의는 살아난다.

 

. 효율의 시대, 잃어버린 인간다움

 

오늘날의 사회는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빠르고 정확한 것이 미덕이 되고, 성과가 사람의 가치를 대신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속도로 측정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잠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정의는 멈춤에서 시작된다. 멈춘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을 보고, 그 고통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철학적 행위다.

 

. 인간답게 산다는 것

 

정의로운 사회는 완벽한 제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함께 감내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약자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이익을 양보할 수 있는 태도, 그것이 정의의 실천이자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정의는 국가의 문제이기 전에 나의 문제.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사회의 윤리를 결정한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 정의를 만든다.

 

. 정의는 인간의 초상

 

공리주의가 행복의 총량을 계산한다면, 정의는 그 행복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웃는가보다, 그 웃음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가를 묻는 것, 그것이 정의다. 정의는 법전 속 추상명사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양심의 언어.

 

정의는 인간의 거울이며, 그 거울 속에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정의는 결과가 아니라 관계이며, 그 관계를 존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답게 산다. 결국 정의는 철학이 아니라 삶의 태도,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한 가장 따뜻한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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