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정의, 고립된 개인에서 함께 사는 인간으로
작성일 : 2025-11-02 10:07 수정일 : 2025-11-02 13:00 작성자 : 고무열 (gmy8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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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
공동체의 정의, 고립된 개인에서 함께 사는 인간으로
정의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옳다’는 확신만으로는 사회를 세울 수 없다. 정의는 ‘나의 善’이 아니라 ‘우리의 선’을 묻는 철학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나머지, 공동체의 책임을 잃어버렸다. 자유와 인권은 풍성해졌지만, 연대와 배려는 메말랐다. 우리는 함께 사는 법을 잊었다.
Ⅰ. 개인의 정의, 공동체의 빈자리
근대 이후의 정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전제로 세워졌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강력한 방파제였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만 강조된 정의는 결국 각자도생의 철학으로 변질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 행복이 타인의 불행 위에 세워질 때 사회는 균열이 간다. 나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타인의 존엄을 침해하지 않을 때만 정당하다. 이 단순한 원칙이 사라진 곳에 정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Ⅱ. ‘나의 옳음’이 부른 분열의 시대
오늘의 사회는 누구나 ‘정의’를 말하지만, 모두 다른 정의를 말한다. 정치의 현장에서도, 시민의 광장에서도, ‘내가 옳다’는 목소리만 커졌다. 각자의 정의가 서로를 공격할 때, 공통의 정의는 사라진다. 정의는 원래 함께 살아가기 위한 언어였다.
그러나 지금의 정의는 서로를 가르는 무기가 되었다. 나의 신념이 타인을 배제할 때, 정의는 이미 독선으로 변한다. 정의가 인간을 하나로 묶지 못할 때,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기만의 주장이다.
Ⅲ. 공동선(共同行善), 정의의 새로운 길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진정한 정의는 공동선에 대한 논의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공동선은 단순한 다수결의 결과가 아니라, 함께 잘 살기 위한 도덕적 합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존재’, 곧 공동체 속에서만 완성되는 존재로 보았다. 인간은 혼자서 정의로울 수 없다. 서로의 선을 존중하고, 함께 선을 추구할 때 비로소 정의는 살아난다. 정의는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방패이자, 공동체의 가치를 세우는 토대다.
Ⅳ. 경쟁을 넘어 연대로
지금 우리의 사회는 경쟁으로 지탱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는 서열로, 직장은 실적으로, 정치마저 대결로 정의된다. 그러나 정의는 싸움의 언어가 아니라 연대의 언어다. 효율이 인간을 분리했다면, 정의는 인간을 다시 잇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약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일은 더 이상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의무다. 공동체의 정의란 결국 함께 잘 살기 위한 최소한의 양심이다.
Ⅴ. ‘우리의 선’을 향한 철학적 회복
정의로운 사회는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불완전함을 함께 감내하는 사회다. 나의 이익을 조금 양보하고, 타인의 아픔을 내 일처럼 느끼는 감수성, 그것이 공동선의 출발점이다. 공동체의 정의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이며, 윤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공리주의가 효율을, 자유주의가 권리를 강조했다면, 이제 정의는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人) 사람 인자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정의는 혼자 외치는 도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다.
자기의 행복을 넘어 ‘우리의 선행’을 고민하는 순간, 사회는 다시 인간적 체온을 회복한다. 정의의 마지막 얼굴은 결국 공동체다. 우리는 혼자 정의로울 수 없고, 함께할 때만 정의로울 수 있다. 그것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철학의 마지막 결론이다.